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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러시아

[러시아사]#10_표트르의 아픈 손가락인 아들 '알렉세이'

by 티제이닷컴 2023.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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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 [러시아사]#9_야만을 야만으로 제압한 표트르

 

[러시아사]#9_야만을 야만으로 제압한 표트르

19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활동한 시인이자 소설가인 푸시킨은 표트르가 채찍으로 개혁에 관한 법령을 썼다고 표현하였고, 우리에게 공산주의를 정립한 것으로 유명한 프로이센 출신의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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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선 글에서 말했듯, 표트르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에 반면 그의 아들인 알렉세이(Aleksey Petrovich, 1690 ~ 1718)는그렇지 못했다. 배움에 대한 결실도 없었으며, 늘 이 핑계 저 핑계 삼아 해야 할 것도 안 하기 일쑤였다.

 일생을 정치에 쏟은 표트르에 비해 알렉세이는 공부를 무척 싫어하였는데, 늘 술과 연회에 빠져 살며 술에 취한 날에는 그의 아빠인 황제 표트르를 욕하거나 그의 개혁을 공공연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어느 날 알렉세이는 본인의 업무에 대한 아버지의 질문을 회피하기 위해서 건강상의 이유를 핑계로 황위 계승권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건 표트르의 속마음을 떠보려는 알렉세이의 속셈이었다. 그러자 표트르는 알렉세이에게 수도사가 되든지 아니면 여태까지의 잘못을 털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황제가 될 준비를 하든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였다. 결국 알렉세이는 수도사가 되기로 결정하였다. 표트르가 죽으면 다시 황제 자리로 돌아갈 꾀를 부리고 있었으나, 표트르가 죽기를 기다리긴커녕 수도원 생활도 못 견디고 오스트리아로 도망쳐 버렸다. 친아들의 모반과 도피는 표트르 일생에 가장 큰 오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둘의 대립은 단순히 부자간의 대립만은 아니었다. 이는 더 나아가 국가 발전에 대립점이 되기도 하였는데, 탈러시아를 주장하는 표트르와 옛것을 주장하는 알렉세이의 모습이 그 당시 러시아 국가를 대변하고 있었다.

 여러 유럽 국가가 변방국이던 러시아를 주목하게 된 것은 표트르의 개혁으로 인한 노력과 희생의 결과였다. 이 둘의 대립으로 인해 러시아는 유럽과 세계의 강자로 서게 될지 아니면 회귀하여 다시 변방국으로 전락해 버릴지에 대한 운명을 결정짓게 되는 것이었다.

 전쟁에 대한 위협과 다각적 외교 노력을 통해 알렉세이는 마침내 다시 러시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차마 자신이 직접 아들을 심판할 수 없던 표트르는 정치계와 종교계 인사들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표트르는 공정한 법정을 구성한 뒤 황제의 아들이라는 지위와는 상관없이 오로지 죄명으로만 알렉세이를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네 명의 군관에게 끌려 들어온 알렉세이는 본인의 죄를 솔직하게 인정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반란을 선동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아버지가 반란 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하려 한다면 러시아 전체가 피로 물들 것이라 경고까지 했다. 또한 본인을 러시아의 전통과 종교의 수호자라 칭하며 민심 역시 자신에게 돌아섰다고도 덧붙였다.

 종교계는 황제의 눈치를 봐서인지 명쾌한 처벌을 내리지 못한 채 그저 성경을 인용해 그의 불효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입장만 밝혔다. 일부는 너그럽게 봐주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정치계에서는 이유를 막론하고 반란자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모든 결정권이 결국 다시 표트르에게 돌아왔다. 하지만 판결이 집행되기도 전에 알렉세이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누구는 병으로 죽었다 하고, 또 다른 일부는 표트르가 황제의 위엄 때문에 그를 비밀리에 사형시킨 것이라는 음모론도 제기되었다.

 표트르는 알렉세이가 죽고 나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평소와 같은 모습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어느 날, 또 다른 아들 역시 세상을 떠버리자 그때는 천하의 표트르도 평정심을 잃어버려서, 3일 동안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표트르 대제의 아픈손가락이었던 아들 알렉세이(Aleksey Petrovich)
표트르 대제의 아들, 알렉세이. 출처 : 위키백과

 

-다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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