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청교도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는 1608년에 종교, 정치적 박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존 로빈스'라는 인물의 주도로 영국에서 도망쳤다. 처음 간 곳은 영국해협 너머에 있는 유럽 본토에 있는 네덜란드였으나, 그곳에서의 정착에 실패하였다. 그러고는 저 멀리 대서양 건너에 있는 그 당시로서는 신대륙이었던 아메리카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들은 유럽을 떠나는 '메이플라워호'에 몸을 싣고 아메리카를 향해 떠난다. 유럽의 이민 회사였던 '버지니아'와 북아메리카 이민 계약을 맺어서 정착할 권리와 이민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받았다. 메이플라워호는 66일의 항해 끝에, 1620년 11월 21일에 지금의 메사추세츠 주 프로빈스타운인 '케이프코드 만'에 도착했다. 청교도 분리주의자 35명을 포함한 총 102명을 태우고 출발한 메이플라워호에선 항해 동안 4명이 전염병으로 사망했고, 살아남은 대부분의 사람도 병에 걸려서 도착 당시에 숨이 끊어질 지경이었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가 도착한 곳은 그들이 원하던 곳이 아니었다. 유럽에서 체결했던 이민 계약서에 때문에 그들은 거기에 정착할 수 없었다. 정착이 불가능했던 그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오늘날의 플리머스(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남동쪽으로 약 64km에 위치)에 도착했다. 플리머스는 이민 계약에 위배되는 곳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플리머스에 정착했다. 처음엔 땅끝에 있던 프로빈스타운에 도착했으나 항해를 계속해 플리머스에서야 정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 정착을 하니 사람들은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우리의 조국인 영국의 관리를 계속 받아들여야 할까?','앞으로 새로운 낙원은 누가,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등의 질문이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회의를 가져야만 했는데, 그 회의에는 성인 남자 51명만이 참여할 수 있었다. 여자와 아이들은 옆에서 들을 수만 있었다 회의 끝에, 그들은 자주적인 식민지 정부를 세우기로 결정하였고, 회의 내용을 담은 문서에 서명하면서 최종 결론을 서면으로 남겼다. 이 문서가 바로 '메이플라워호 서약서(Mayflower Compact)'이다. 그들은 영국 국왕에 대한 충성과 청교도의 신앙을 지키기로 맹세했다. 그러면서도 국민 자치 단체를 설립하고 그곳 사정에 적합한 법률과 제도를 만들고 지킬 것 또한 약속했다. 역사학자들은 이 '메이플라워호 서약서'를 미국 역사상 최초의 정치적 성격을 띤 계약 문서로 본다. 이 서약서는 미국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로서 그 의미가 크다.
오늘날 세계 질서를 잡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시작점이 되는 순간이다. 아메리카에 원주민은 진작부터 살고 있었겠지만, 그들이 미국이란 나라를 만든 것은 아니니 말이다. 아무것도 없고, 정보도 부족한 아메리카에 처음 입성하는 필그림 파더스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프로빈스타운을 지나 플리머스에 도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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