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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포르투갈&스페인

[스페인] 아메리카 정복기: 아즈텍 문명의 비극 두 번째 이야기

by 티제이닷컴 2024.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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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텍의 비극 두 번째

 타바스코에서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던 코르테스 함대는 4일 후 아즈텍 왕국 영토에 들어섰다. 산후안데울루아에서 코르테스는 아스텍 국왕 몬테주마의 특사를 만났고, 국왕이 이들의 출현에 매우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몬테주마는 아주 특별한 전설을 믿고 있었다. 아스텍 신화에 따르면 아스텍인들이 계산하는 12년을 주기로 예전에 아스텍 영토를 지배했던 신이 나타나는데, 그 시기가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몬테주마는 코르테스 일행이 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이렇게 불결하고 더러운 작자들이 과연 신일까'하는 생각이 엇갈리고 있었다.

 어찌 됐든 몬테주마는 코르테스 일행에게 공물을 바쳤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신의 증표와 황금이 있었다. 코르테스가 그것을 머리 위에 쓴다면 그가 분명히 신일 것이고, 만약 그들이 정말 신이라면 이 황금을 가지고 떠날 것이었다. 그는 일단 사신에게 코르테스 일행을 성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명령했다.

 코르테스는 몬테주마로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떠나지 않았다. 코르테스 일행은 산후안데울루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순식간에 정착 도시 베라크루즈를 세웠다. 코르테스는 예전에 시장을 역임했던 경험을 살려 시의회를 만들고 스스로 이 도시의 지휘관이자 수석 법관이 되었다.

 물론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이 자치도시는 스페인의 영토였지만 코르테스는 쿠바의 총독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도시를 세운 코르테스는 배수의 진을 치기 위해 이끌고 온 함선 11척 중 10척을 부숴버렸다. 그리고 한 척에 황금을 실어 스페인으로 보냈다. 이때 그는 스페인 국왕에 대한 충성심 가득한 편지를 써서 함께 보냈다. 코르테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멕시코 정벌이었다.

 베라크루즈에서 멕시코 성까지 가려면 해안을 따라 수많은 아스텍 속국을 지나야 했다. 코르테스는 자신이 이끌고 온 몇백 명 군사로 수만 대군의 아즈텍 왕국을 쓰러뜨리기 힘들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속국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코르테스는 먼저 토토나카족들과 동맹을 맺는 데 성공했고, 그들이 아스텍에 반기를 들도록 부추겼다. 그리고 토토나카에 있던 아스텍 세금 관리인을 사로잡아 몬테주마의 조카에게 보냈다. 아즈텍 관리는 몬테주마의 조카에게 토토나카는 이미 스페인의 신민이 되었으며 코르테스 일행이 곧 멕시코 성으로 올 것이라고 전했다.


멕시코 성에 도착한 코르테스

 멕시코 성까지 약 400킬로미터를 지나는 동안 코르테스 일행은 해안 길로만 간 것이 아니라 해발 3,000미터가 넘는 험준한 산맥을 넘어가기도 했다. 그 높은 산 위에는 유일하게 아스텍의 지배를 받지 않는 틀락스칼라족이 살고 있었다. 이들은 견고한 요새를 바탕으로 스페인 군대에 용감히 맞서 싸웠다. 이들 5만 틀락스칼라 군대는 매우 거칠고 도전적이었다. 그러나 코르테스는 대포를 이용해 두 차례 야간 기습 작전을 펼쳤다. 틀락스칼라족은 결국 화의를 요청했고 코르테스는 그들에게 자신의 군대에 합류할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해서 코르테스 군대의 세력은 더욱 강해졌다.

 계속 전진하던 코르테스 부대는 멕시코 성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촐룰라에 도착했다. 이때 코르테스는 이곳에서 음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촐룰라는 이미 아스텍 국왕의 명령을 받고 코르테스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코르테스는 선제공격해서 이들을 포로로 잡았다. 코르테스의 선제공격으로 촐룰라족 6,000명이 죽었고 나머지는 코르테스의 부하가 되었다.

 코르테스는 포포카테페틀 화산에 올라 스페인인 최초로 멕시코 성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아스텍 언어로 테노치티틀란이라 불리었다. 이 도시는 텍스코코 호수 안에 만들어진 인공 섬이었다. 이 때문에 성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커다란 나무판을 호수 다리로 이용했는데, 이 다리는 길이가 8킬로미터에 말을 타고 7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는 넓이였다. 성안에는 4개의 주요 간선로가 성을 네 부분으로 나누고 있었고 중심부에는 높이 40미터의 거대한 피라미드형 신전이 우뚝 솟아 있었다. 이곳에는 아스텍 종교의식이 거행될 때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제단이 있었다.

 코르테스를 수행했던 디아스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 위로 웅장한 멕시코 성의 성벽 하나하나가 영롱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것은 1519년 11월 초의 일이다. 그러나 코르테스조차도 2년 후 이 웅장한 도시가 폐허와 죽음이 깃든 암울한 도시가 될 줄은 몰랐다.

코르테스
코르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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