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46 [일본 근현대사]#10_구미 사절단 파견과 메이지 신정권 등장 이와쿠라 사절단의 구미 시찰 중 프로이센에서 러시아로 향하는 기차에서 기도 다카요시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국가마다 크기도 문화도 다르지만, 국가의 흥망성쇠는 오로지 해당 국가의 법과 제도에 달려 있음을 깨달았다. 구미사절단 파견 1871년 12월 23일 일본 요코하마항, 4,500톤짜리 미국 상선 아메리카호가 천천히 항구를 벗어나고 있었다. 항구에는 일본의 구미 사절단을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이 있었으며, 아메리카호에는 그들과 작별을 고하고 있는 구미 사절단 단원들이 인사하고 있었다. 이 배는 요코하마에서 출항하여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를 향했다. 이는 일본 그 후 일본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꿀 항해였다. 이와쿠라 사절단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절단은 유럽과 미국을 2년에 걸쳐 둘러본다. 2년이란 시간.. 2023. 12. 25. [일본 근현대사]#9_보신전쟁, 저물어가는 막부 시대, 그리고 메이지 유신의 시작 왕정복고 정변으로 인해 조정을 차지한 도막파와 막부의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제 그들에게 전쟁은 피할 수 없는 대화 수단이 되었다. 이튿날 교토 서부의 니조 성에 머물고 있던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관직을 취소한다는 어지를 받았다. 보신전쟁(1868~1969) 전날 새벽부터 그의 친번 위병들도 조정에서 모두 철수당했으며,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그는 정변을 일으켜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하고 정변 준비에 착수한다. 당시 그의 수중에는 1만 군대가 있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민심은 술렁이고 장정들은 갑옷으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후다이 다이묘들이 성 밖을 지키고, 성안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어지를 전하러 온 오와리 번주 도쿠가와 요시카츠와 에치젠 번주 마쓰다이라 요시나에게 어지.. 2023. 12. 24. [일본 근현대사]#8_도막파의 왕정복고(vs 쇼군의 대정봉환) 1866년 4월, 교토의 사쓰마번 관저에서는 조슈번의 기도 다카요시와 사쓰마번의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가 담판을 시작했다. 도사 번의 사카모토 료마와 나카오카 신타로의 물밑 작업에 힘입어 강력한 두 개의 번이 서로 손을 잡은 것이다. 이 담판에서 사쓰마번은 조슈번에 위기가 닥칠 경우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러자 막부는 조슈번을 겨냥한 제2차 조슈 정벌을 일으켰다. 막부와 조슈번, 두 세력의 뒤에는 각각 프랑스와 영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2차 조슈 정벌 7월 18일, 막부가 제2차 조슈 정벌을 시작했으나, 사쓰마번은 약속을 깨고 출병을 거부했다. 다른 30개 번이 네 방향에서 조슈에 협공을 펼쳐, 조슈는 본거지인 오시마를 내주어야 했다. 하지만 조슈번은 다카스기 신사쿠가 직접 .. 2023. 12. 24. [일본 근현대사]#7_존왕양이 사상과 막부의 몰락 1860년대 당시 일본 전역에서 외국인에 대한 분노가 들끓고, 외국인에게 저항하는 사건이 빈번히 일어났다. 1862년 9월 14일, 사쓰마번 번주의 후견인인 시마즈 히사미쓰는 양이에 관한 조정의 의지를 막부에 전달한 후 에도를 떠나 귀로에 올랐다. 외국과 갈등한 일련의 사건들 그런데 그의 일행 700여 명이 요코하마 부근 나마무기촌에 다다랐을 무렵, 4명의 외국인이 말을 타고 나타났다. 그들은 요코하마에서 수출업을 하는 영국인 리처드와 그 회사 직원 클라크, 그리고 홍콩에서 활동하던 영국인 상인 부부였다. 히사미쓰 일행이 길을 모두 점거하고 행진하자, 이 네 명의 영국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영국인 부인이 타고 있던 말이 무언가에 놀랐는지 갑자기 히사미쓰 일행을 향해 돌진하였다. .. 2023. 12. 22. 이전 1 ··· 49 50 51 52 53 54 55 ··· 6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