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 [러시아사]#13_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개혁: 두 번째 이야기
2003년 5월 27일, 러시아 연방 대통령의 초대를 받은 전 세계 45개 국가의 원수 및 정부 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상트페테르부르크 탄생 300주년을 축하했다. 러시아 정부는 자그마치 30억 달러를 들여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복원했으며, 이 축제는 5년 전부터 준비되었다.
세계적으로 3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도시는 많다. 같은 러시아의 모스크바만 하더라도 800년 이상의 역사가 있다. 하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바로 러시아의 세계를 향한 진취적인 첫걸음을 상징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개혁과 대외 개방의 산물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탄생하던 순간부터 유럽의 지식을 배우고 세계와 교류하며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쳐야 한다는 중대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렇기에 러시아는 강대했던 과거를 거울삼아 개혁 개방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데 더욱 힘쓸 것이라는 자신들의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2003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한 것이다. 볼테르가 "유럽 모든 도시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 몸에 품고 있는 곳"이라 칭송하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오늘날 "북방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린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발트해 연안의 네바강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300년 전이었던 18세기 초만 하더라도 현재의 번화한 모습은 절대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이곳은 늪과 못이 많아서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었으며, 이리 떼의 출몰이 잦고, 바닷물이 범람하는 인간이 거주하기엔 최악의 입지 조건이었다. 심지어 이 땅의 통치자는 러시아가 아니라 그 당시 북유럽 강국이었던 스웨덴 왕국이었다.
1703년 5월 27일, 러시아의 황제는 한바탕의 혈전 끝에 이곳을 쟁취하였다. 그는 검으로 발아래를 가리키며 외쳤다. "하나의 거대한 도시가 바로 이곳에서 탄생할 것이다." 이 인물은 당연 표트르 대제였다. 표트르 대제는 그 땅 위에서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변모하기 위한 원대한 꿈을 이루려 했던 것이다. 그가 선포하였을 때만 해도, 황량하기 그지없는 늪지대였지만, 그곳이야말로 많은 러시아인들이 그토록 꿈에 그리던 땅이었다. 그렇다. 그 당시 러시아에게는 바다로 나갈 수 있는 관문이 절실히 필요했다.
바다에 대한 갈망은 표트르의 일생을 지배하였으며, 러시아의 영원한 숙원사업이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강이나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일단 키를 잡으면 지칠 줄 모르고 파도와 싸우며 배를 몰았다. 어느 해 겨울, 네바강이 모두 얼어버리자 표트르는 궁전 바로 앞 100미터 정도 겨우 얼지 않은 물가에 배를 띄우고 놀았던 적도 있다.
1693년, 황제 자리에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표트르는 콜라반도와 카닌반도를 지나 남쪽으로 깊숙이 만입한 백해에 위치한 러시아의 유일한 항구였던 아르한겔스크를 방문했다. 겨울이면 바다가 모두 얼어버렸기 때문에 이 항구는 1년 중 겨우 3개월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방문 당시 표트르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항구에는 러시아의 목재와 아마, 모피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항구의 얼음이 녹을 때까지 기다릴 여력이 있는 외국인들만이 방문하여 물품을 구매하고 있었다. 몇 안 되는 외국인마저도 물건값 흥정에 필사적이었으며 러시아 상인들은 본전도 안 되는 가격에 파느니 물건을 버리는 게 낫다며 아우성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던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 표트르는 얼지 않는 부동항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오랫동안 세계와 단절되어 있었던 터라 러시아에겐 개방이 절실했다. 그리고 개방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세계를 향한 창이었다. 대항해 시대를 살아가는 국가에 있어 바다로 향하는 관문은 경제의 동맥 역할을 담당했다. 이는 표트르가 귀족들을 이끌고 직접 네덜란드로 가서 갖은 고생을 하며 조선 기술을 배웠던 이유이기도 하다. 항구. 얼지 않는 항구가 필요했다.
당시 러시아의 상황을 두고 훗날 마르크스는 회자했다. "표트르 대제 이전의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이 백해 이외에 바다로 통하는 또 다른 길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백해에 위치한 유일한 항구는 일 년 중 4분의 3 이상 얼어 있어 운항이 불가능했다. 오늘날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위치한 곳은 1,000년 전 핀란드와 스웨덴이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치렀던 장소이기도 하다. 결국 훗날 네바강 부근부터 발트해의 항만 도시 탈린의 연안 지역까지 다른 나라에 정복되고 말았으며, 바다를 가까이하지 않았던 슬라브족의 특성을 설명해 주기라도 하듯 해안선, 특히 발트해 연안 지역의 해안선에는 러시아 땅이 전혀 없었다."
표트르는 발트해에 러시아 세상을 향한 관문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스웨덴과 21년간에 걸친 전쟁을 벌였다. 이 대북방전쟁(1700~1721)에서 표트르는 지휘관이자 일반 병사로 활약했다. 그는 여러 차례의 위험을 넘겼으며 포로로 잡힐 뻔하기도 했다. 이 관문을 얻기 위해 표트르는 유럽의 군사 조직 방식을 이용해 상비군을 훈련했으며 1716년에는 러시아 최초로 군사법을 제정해 공포하기도 했다. 이로써 러시아 군대의 정규화가 시작되었다.
표트르의 개혁 가운데 가장 커다란 의의를 지니는 것은 해군 창설이다. 젊은 시절부터 바다로 나갔고 네덜란드에선 조선 기술을 배운 표트르는 러시아에 해군을 편성했다.
1701년부터 1721년까지 대북방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의 해군 군비 지출은 15배나 증가했으며 이를 통해 러시아는 48척의 전투함과 800여 척의 보트를 보유하게 됐다. 한편 표트르는 당시 유럽인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해군 지휘관으로 추앙받았으며, 러시아,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연합 함대의 지휘관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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