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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러시아

[러시아사]#16_'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과 의의

by 티제이닷컴 2023.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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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트르에게 있어 스웨덴과의 전쟁에서 거둔 승리가 더할 나위 없이 값진 이유는 바로 러시아가 발트해를 통해 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바닷길이 생겼기 때문이다.

 1703년 11월, 술과 소금을 가득 실은 네덜란드의 상선이 네바 강에 닻을 내렸다. 그 배의 선장은 금화 500개를 상금으로 받았다. 표트르는 네바강에서 가장 먼저 닻을 내리는 외국의 배에게 금화 500개를, 두 번째 배에는 300개를, 그리고 세 번째 배에는 금화 100개를 상금으로 주겠다 공표했었다. 표트르는 러시아와 유럽이 처음으로 직접 경제 교역을 하는 걸 특이한 방식으로 축하하며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음을 상징한다. 표트르는 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 최초의 관문인 이곳에 수백 척의 배들이 운집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이곳을 단순한 항구로만 남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이곳에 러시아의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려 했다. 사람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던 늪지대, 스웨덴의 사격 거리에 들어 있는 위험한 곳, 국가의 중심부에서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곳, 경제 기반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는 이곳. 이곳이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들어설 지역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표트르는 이 사실들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지닌 전략적 의미만을 머릿속에서 그려내고 있었다. 전략적으로 이곳은 동 발트해의 러시아 군사력을 모두 집결시킬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앞으로는 발트해가 흐르고 있고,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작은 섬들에는 요새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대적인 사업이 시작됐다. 표트르는 이곳을 러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으며, 이곳을 통해 유럽과의 공간적인 거리뿐 아니라 발전 수준과 문화 수준의 격차까지도 최대한 줄이려고 했다. 이렇게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가 러시아 역사에 쓰이게 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표트르의 작은 집'이라고 불리는 네덜란드식 건물이 하나 있다. 이 집은 실제로 표트르가 거주했던 집으로, 궁전을 내버려 두고 여기서 밤을 보내는 걸 굉장히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표트르는 이 집에 8년 동안이나 거주하면서 자신의 꿈이었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건설을 실현했다.

 당시 유럽 최고의 도시는 명실상부 프랑스의 파리였다. 그러니 다른 국가들 역시 파리와 같은 도시를 갖기 위해 애썼는데, 표트르는 프랑스의 스타일에 만족하지 않았다. 더 큰 꿈을 꾼 그는 유럽 전체를 자신의 발밑으로 옮겨오고 싶어 했다. 그는 유럽 각국의 유명한 건축가들과 러시아 전역의 솜씨 있는 장인들을 모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불러들였다. 또 건축에 필요한 자재를 마련하기 위해 해안에 정박하는 배는 무조건 30세제곱미터에 이르는 석재를 싣고 오도록 했다.

 기록에 따르면, 새로운 수도를 건설할 당시에 기아와 질병, 과도한 노역으로 숨진 사람이 셀 수 없이 많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사병과 범죄자도 있었으며, 스웨덴의 포로도 있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린 그들은 변변한 도구도 없이 주머니에 진흙을 가득 채워 운반해야 했으며, 잔뜩 젖어버린 셔츠를 갈아입을 수도 없어서 그대로 병에 걸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후대 사람들은 "표트르의 도시는 눈물과 시체의 산 위에 세워졌구나!"라고 표현하였는데, 과장된 표현은 아니었다.

 1715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새로운 정치 중심지로 우뚝 섰다. 정치와 군사에 관한 표트르의 명령은 모두 이곳에서 내려졌으며, 행정, 사법 기관인 추밀원의 하위 기관들도 모두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귀족들 역시 관저를 옮겼으며, 표트르 대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러시아 최초의 학교를 짓는 등 교육 시설도 건설함으로써 문화 중심지로 만들었다. 1721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에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595개의 가로등까지 세워졌다.

 표트르 집권 마지막 해인 1725년,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도시는 이미 규모가 20제곱킬로미터를 넘어섰고, 주민 수도 러시아 전체 인구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7만 명 규모의 도시가 되었다. 또한 표트르가 그렇게 염원한 유럽과의 무역 역시도 활성화가 되었는데, 이곳을 드나드는 외국 함선은 180여 척에 이르렀다. 이제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무역 도시가 된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2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기능 면에서나 품격 면에서도 수도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이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레닌이 수도를 다시 모스크바로 옮기기까지 214년에 걸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줄곧 러시아의 수도를 지켰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흐르는 네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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