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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영국

[영국]#32_크롬웰, 영국의 호국경이 되다

by 티제이닷컴 202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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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롬웰 집권하다

 10여년간 전쟁을 치르며 새로운 이익집단으로 군대가 급부상하였다. 군대는 편히 앉아 탁상공론만 하는 의회에 대해 반감을 가졌다. 군대의 무력은 대개 그 권력의 기반이 된다. 군대는 자신들이 세금을 정하고 징수해서 고정적인 수입을 갖게 되기를 바랐지만, 곧 의회가 걸림돌이 되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1648년에 크롬웰이 병사들을 보내 자신에게 비협조적인 장로파 의원 140여 명을 의회에서 강제로 축출한 이래 의회에는 고작 90명의 의원만이 남아있었다. 이후에는 50~60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의회는 이렇게 몇 차례의 숙청을 거쳐 잔부의회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군대 편에 기울어 있던 크롬웰은 이 '골칫거리' 기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미 잔부의회는 '둔부 의회(영어로 '찌꺼기'를 뜻하는 Rump Parliament)'라고 불릴 정도로 경멸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들조차도 크롬웰에게 협조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653년 4월, 크롬웰은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쳐들어가 의회를 해산시켜 버렸다. 그는 의원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떠나라! 우리에게 너희 일을 모두 넘기고 가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빨리 떠나라!" 의원들이 크롬웰에게 '자유'를 달라고 하자 그는 신랄한 어조로 "숨 쉴 자유가 있지 않은가!"라고 대답했다.

 의회는 찰스 1세를 타도하고 오히려 더 어려운 적수를 만나게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게임 규칙에서는 독재자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게 끝이었다. 그리고 이 적수에게 대항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정쟁에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은 이들의 세력 다툼에 더 이상 흥미가 없었다.

 국왕이 가장 큰 적인 줄만 알았던 의회는 군권을 장악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크롬웰 경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하는 수 없이 의회를 해산했다.


크롬웰은 왜 왕관을 거부하였는가

 크롬웰은 찰스 1세보다 앞서나갔다. 1653년 12월 16일, 영국 역사상 보기 힘든 취임식이 런던 시청에서 거행됐다. 시청 안은 각계각층의 지도 인사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크롬웰 경은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정중앙의 의자에 근엄하게 앉아 있었다.

 런던 시장은 크롬웰 장군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호국경으로 취임한다고 선포했다. 그런 다음 의전관이 옥새를, 런던 시장이 국보를 크롬웰에게 바쳤다. 그는 몸을 일으켜 그것들을 받아들였다. 곧이어 한 장군이 영국의 새로운 헌법인 '통치헌장'을 낭독했다. 호국경의 임기는 종신제로 하며, 국가의 모든 정책은 호국경을 통해서만 발효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사병들의 열렬한 환호성 속에서 크롬웰은 영국의 최고 통치자가 되었다. 왕관을 쓰지 않은 통치자가 나라를 지배할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은 바로 군대였다. 그는 군사 독재자가 되어 3차에 걸쳐 의회를 소집하고 또 해산시켰다. 이 중 두 번은 각기 다른 헌법을 채택했으나 그 어떤 것도 효력을 발휘하진 못했다. 하지만 크롬웰은 국왕의 자리에 오르는 것만은 한사코 거부했다.

 그의 군대가 왕으로 칭하는 것을 반대했을 뿐 아니라 국왕의 책임을 내세워 자신을 옭아매려는 의회의 속셈을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국왕이 되면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전통에 따라 법률의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크롬웰 경은 이에 대해 자신은 군사독재 정치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좀 더 효율적인 정부를 만들고 싶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크롬웰의 이런 결단이 불가피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달리 마땅한 정치체제를 만들어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호국경이 된 크롬웰은 입법, 행정, 군사 및 외교권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5년의 통치기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날들이었다. 크롬웰 경의 권력은 정점에 달했다. 41명의 국무위원은 모두 그의 최측근으로 크롬웰의 손발이 되어 주었다. 그는 체제를 안정하기 위해 전국을 11개의 군 관할 지역으로 분리하고 각 장군에게 행정장관의 임무를 맡겼다.

 국왕이 소멸한 공화국에서 국민들은 불현듯 자신들의 삶이 예전과 마찬가지로 힘이 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국왕의 폭정을 증오했던 자신들이 바로 청교도 독재자의 손에 운명을 맡겨 버렸다.

영국 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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