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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일본

[일본 근현대사]#57_세계 2위의 경제 대국, 그 거품이 터지다

by 티제이닷컴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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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2위의 경제 대국이 되다

 이케다 내각이 집권하던 1963년, 일본의 GDP는 676억 달러로 같은 시기 미국의 11.4퍼센트, 서독의 70퍼센트, 영국의 78퍼센트에 달했으며, 1966년까지 실질적인 경제 성장률이 13퍼센트를 기록해 일본은 전체 GNP 규모가 미국과 독일, 영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5위를 차지했다.

 메이지 유신을 실시한 지 100년째 되던 1968년, 일본의 GNP가 서독을 앞질러 1위인 미국의 바로 뒤를 잇는 2위로 올라섰다. 당시 일본의 국민 소득은 여전히 세계 20위에 머물러 일본인들의 생활이 '세계 제2위 경제 대국'의 국민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지만, 주요 산업의 국제 경쟁력은 매우 강했다. 일본 경제는 국민 경제의 활력과 고성장률, 낮은 실업률, 안정된 물가를 무기로 국제무대에서 확고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장기적인 고속 경제 성장은 일본 사회에 지대한 변화를 몰고 왔다. 일본 경제를 이끄는 주요 원동력은 바로 기술과 소비 혁신이었다. 산업 구조 가운데 3차 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인구와 노동력의 대이동이 이루어졌다. 1970년에는 전체 인구에서 도시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72퍼센트까지 늘어나, 도쿄권, 오사카-고베권, 주쿄권 등 3대 도시권이 형성되고, 농촌 인구가 급격히 감소해 1960년대에 농촌 이탈 인구가 매년 60만 명에 달했다.

 장기적인 경제 고속 성장으로 소득 수준의 차이가 계속 축소되어 1970년대 초기에는 국민의 70퍼센트 이상이 본인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사회 전체적으로 중산층 의식이 확대되었다. 소비의 평균화가 이루어져 가정마다 일상 소비품과 레저 분야에 대한 소비가 늘어났다.

 전문 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중산층으로 유입되어, 1970년대에는 그 비중이 22퍼센트까지 증가했다. 농촌 유입 인구도 자신들의 생활에 비교적 만족하고 업종별 소득 수준 격차는 점점 줄어들었다. 농촌과 도시 생활 수준에 큰 차이가 없었으며 1966년에는 농민의 1인당 소득은 이미 도시 근로자를 넘어섰다.


오일 쇼크, 일본 경제를 흔들다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이 발발하고, OPEC이 원유 가격을 21퍼센트 인상하자, 세계적으로 오일 쇼크가 발생했다. 일본은 그 충격을 가장 먼저 받은 국가였다. 일본 산업의 석유 소비량은 전체 석유 소비량의 99.7퍼센트에 달했다. 1차 에너지 90퍼센트를 수입에 의존했으며, 중동으로부터의 수입이 전체 석유 수입의 82퍼센트를 차지했다. 오일 쇼크는 18년간 탄탄대로를 달려온 일본 경제에 근본적 변화를 불러왔고, 한동안 조정을 거친 후, 일본 경제는 다시 성장률 4퍼센트대의 안정 성장기로 접어들었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 경제는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했다. 대외 무역과 투자가 많이 증가하고 경제 구조도 끊임없이 변화했다. 과학 기술과 지식 혁신의 비중이 확대되었고, 농촌의 생활 수준이 상류 중산층 수준으로 올라섰다.

 1985년 말에는 해외 순자산이 영국과 서독을 초월해 세계 최대 채권국이 되었다. 1987년에는 일본의 GDP가 세계 총생산액의 15퍼센트를 차지하고, 미국의 56퍼센트 수준으로 올라섰다. 1988년, 일본은 투자 대국이자 채권 대국, 그리고 금융 대국이 되었다. 또한 그해 1인당 평균 생산액은 스웨덴을 앞질러 세계 1위를 차지함으로써, 경제 대국의 면모를 보여줬다.


플라자 협약과 거품 경제

 세계 최대 채무국인 미국이 일본의 놀라운 경제 성장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1985년 9월, 영국, 미국, 서독, 프랑스, 일본 5개국 재무장관이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회의를 열고, '플라자 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은 주요 화폐의 달러 대비 환율 상승을 유도했고, 환율이 각국의 경제 기초를 반영하도록 하기 위해 체결된 것이었다. 플라자 협약이 체결된 이후, 일본은 엔화 가치를 평가 절상해 1년 동안 엔화 환율이 60퍼센트나 상승했다.

엔화의 가격을 낮게 책정하여 수출량을 늘리던 일본이었기에, 엔화의 강세는 일본 경제 구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협약으로 인한 엔화의 강세로 일본 수출 기업들은 경쟁력을 잃게 되었다. 또한 플라자 협약 이후, 일본 경제는 급격한 환율 변동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불안정성을 겪는다. 엔화의 강세와 함께 일본의 수출 산업이 타격을 받아 경제 성장이 둔화하였으며, 이에 따라 1990년대 초반에는 일본의 경제 침체 기간인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1980년대 후반에는 일본이 거품 경제의 최정점을 경험했다. 부동산 및 주식 시장이 급등하면서 경제는 호황을 경험했지만, 이는 지나치게 높은 수준으로 이어짐으로써 금융 부문에서의 불안정성을 야기했다.

1980년대 후반의 일본은 플라자 협약에 따른 엔화 강세와 동시에 과도한 신용 창출 및 투자로 인한 거품 경제의 위험에 직면한다. 1990년대 초반, 거품이 터지면서 부동산 및 주식 시장의 가격이 하락하고, 이는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일본의 경기 침체로 이어지게 된다.

버블 경제 시기의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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