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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러시아

[러시아사]#1_쌍두 독수리

by 티제이닷컴 2023.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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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 [러시아사]#0_동서양의 정신이 공존하는 러시아

 

[러시아사]#0_동서양의 정신이 공존하는 러시아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친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지리적 특성이 이러한 만큼 러시아에는 동양과 서양의 정신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역사를 가지게 된다. 러시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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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의 글에서처럼 비잔틴의 공주였던 소피아는 쌍두 독수리 문장을 몸에 두르고 신부가 되었다. 이만큼 쌍두 독수리는 기독교계에서는 상징적인 문장이다. 아직도 러시아의 국장에는 쌍두 독수리가 새겨 있을 만큼 러시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의 국장을 보면, 독수리의 발톱에는 각각 금빛 구슬과 지팡이가 물려 있다. 방패 한가운데에는 은빛 갑옷에 푸른 망토를 두른 채 용을 무찌르고 있는 기사 세인트 조지가 그려져 있다. 260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훗날 로마의 기병 군관의 자리에 오른 세인트 조지는 무척 용맹한 군인이었다. 그리스도교도를 박해하는 로마 제국에 맞서다 303년 살해됐던 그는 494년에 교황 겔리시우스 1세에 의해 성인으로 봉해졌다. 세인트 조지는 언제나 약자를 보호하고 침략자에 맞서 억압받는 이들을 지켜내는 정의의 힘을 대변하는 인물로 묘사되었다.

 

 원래 쌍두 독수리는 수많은 유럽 대륙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에서 힘차게 휘날렸던 로마 군대 깃발의 문양이었다. 훗날 로마가 동서로 분리되면서 쌍두 독수리는 동로마 제국에 계승됐고, 그때부터 비잔틴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 황실의 휘장이 됐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비잔틴 제국은 언제나 동쪽과 서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1454년, 오스만 튀르크의 술탄 마호메트 2세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고, 이 전쟁에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천 년 제국 동로마는 멸망하고 말았다. 이때 콘스탄티누스 11세의 동생은 아들 둘과 딸 하나(소피아)를 데리고 로마로 도망쳤다. 세 남매는 로마 교황의 손에서 자랐고, 교황은 오스만 세력을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소피아를 모스크바 대공이었던 이반 3세에게 시집을 보내게 된 것이다.

 

 1497년, 이반 3세가 쌍두 독수리를 자신의 국새에 쓰기 시작했으며, 그 후로 역대 제정 러시아 황제들이 끊임없이 모양을 보완해 나갔다. 1882년, 알렉산더 2세 때부터는 쌍두 독수리가 국장으로 확실히 정착되었다. 당시 국장 속의 쌍두 독수리는 세 개의 왕관을 쓰고 있었는데 두 개의 작은 왕관은 러시아가 동서쪽을 공유할 권리를 가졌음을, 가장 큰 하나의 왕관은 러시아가 황제의 최고 권력 아래에 통일됐음을 상징했다. "우리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심장을 가지고 있다."라는 게르첸의 말은 러시아 국장에 대한 가장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해석으로 평가된다.

 

 1917년, 소련이 들어서며 러시아의 국기, 국장 등이 폐지되기도 했지만 소련이 해체한 이후인 1993년, 옐친 대통령 시절부터 다시 쌍두 독수리가 국장으로 쓰이게 됐다. 시간이 많이 지나 제자리를 찾은 만큼 쌍두 독수리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독수리의 머리에는 새로운 세기의 러시아 연방과 그 주체들의 주권을 대표하는 표트르 대제의 왕관 세 개가 씌워졌다. 금빛 구슬과 지팡이는 통일 국가 및 국가의 권력을 상징하고, 세인트 조지는 자유와 독립 수호를 위한 러시아 국민들의 결심과 용기를 대변하게 되었다.

러시아의국장
러시아의 국장.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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