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이 지원한 해적, 드레이크의 등장
스페인이 네덜란드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영국은 스페인의 봉쇄 조치로 네덜란드와의 무역에 타격을 입었다. 1572년 안트베르펜 이남의 하류길이 막히자 영국의 양모와 방직품 수출이 어려워졌다. 지브롤터 해협에서도 스페인 함대에 가로막히자 영국 상인들과 항해사들은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했다. 바로 이때, 호킨스, 드레이크와 같은 영국 해군 역사상 유명한 명장이 등장했다.
호킨스는 1568년 3차 아메리카 탐험 도중 배가 파손되자 잠시 멕시코에 정박했다. 그러나 호킨스는 이곳에서 스페인 총독에게 습격받아 재물을 약탈당하고 많은 영국 선원이 죽임을 당했다. 호킨스는 이때부터 스페인에 원한을 품게 되었다. 몇 년 후 호킨스는 드레이크를 파견해 스페인의 카리브해 식민지를 습격하고 스페인이 아메리카에서 채취한 황금을 약탈했다. 이 때문에 드레이크는 스페인에서 해적의 대명사가 되었다.
드레이크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후원으로 세계 탐험을 시작했다. 1577년 그는 아메리카 대륙 해안선을 따라 남하한 후 마젤란 해협을 통과했고 다시 칠레와 페루 해안선을 따라 북상하면서 스페인 식민지를 습격했다. 그리고 태평양을 횡단해 동인도의 여러 섬에 상륙했다. 다시 인도양을 지나 희망봉을 거쳐 아프리카 서부 해안선을 따라 북상해 3년 만에 세계 일주에 성공한 최초의 영국인이 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충실한 신하이자 해양 탐험가였던 월터 러레이는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명언을 남겼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곧 세계를 지배한다."
드레이크가 세계 일주에 성공한 후, 영국은 그들만의 원대한 발전 계획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마르틴 프로비셔가 북극을 거쳐 아시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고, 험프리 길버트가 뉴펀들랜드를 점령했다. 러레이는 북아프리카에 식민지 건설을 계획했다. 이때부터 영국은 야심 찬 해외 정복 활동에 시동을 걸었고 이후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엄청난 규모의 함대를 조직했다. 영국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해양 패권을 독점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영국과 스페인의 해상 전면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스페인 vs 영국, 종교를 넘어 바다의 지배권을 장악하라
1570년을 전후해 가톨릭 귀족들이 잉글랜드 북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 반란을 진압하자 교황 비오 5세는 영국 여왕을 로마가톨릭에서 제명한다는 칙령을 발표했다. 그리고 모든 가톨릭교도에게 힘을 합해 엘리자베스 여왕을 타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몇 년 후, 펠리페 2세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무너뜨릴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영국 역시 가톨릭교회에 강력히 맞섰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1580년 영구 종교 개혁에 방해가 되는 가톨릭 예수회 전도사들을 해산시키고 영국 의회를 소집해 영국에 들어와 가톨릭을 전파하는 전도사들을 죽여도 좋다고 발표한다. 이때부터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 기간 내내 180여 명의 가톨릭교도가 반역죄라는 명목 아래 영국에서 화형에 처했다.
스페인이 군사를 일으킨 직접적인 원인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를 참수했기 때문이다. 가톨릭 신봉자였던 메리 스튜어트 여왕은 남편을 살해하고 국민을 분노하자 어쩔 수 없이 엘리자베스에게 도망쳐온다. 그러나 메리 스튜어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그늘에서 잉글랜드 가톨릭교도들의 반란을 지지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녀를 죽이고 싶진 않았지만, 신교 세력의 강력한 항의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메리를 단두대로 보냈다.
1580년 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 왕권을 물려받음으로써 강력한 포르투갈 해군과 천혜의 항구도시 리스본을 손에 넣었다. 1585년 펠리페 2세는 교황에게 영국 공격을 선언한다. 1587년 영국이 네덜란드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병사를 파견해 네덜란드와 함께 스페인에 맞서자 펠리페 2세는 드디어 영국에 선전포고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드레이크가 이끄는 함대를 주력부대로 내세워 스페인에 대항했다. 1587년 4월 드레이크는 스페인 함대가 카디즈 항에 정박해 있음을 알고 '펠리페 2세의 수염을 불태워라.'라는 작전명과 함께 기습작전을 펼쳐 영국 침략을 준비하고 있던 스페인 함정 24척을 불태우고 많은 군수품을 약탈했다. 곧이어 드레이크는 아조레스 제도에서 스페인 선박 한 척을 나포했다. 스페인의 다른 함대는 영국 함대를 찾으러 나섰다가 돌아가는 길에 폭풍을 만나 큰 피해를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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