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학/영국

[영국]#10_존 왕의 죽음과 <마그나 카르타>의 이모저모(1)

by 티제이닷컴 2024. 6. 22.
728x90
반응형

존 왕의 최후

 존 왕은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할 때만 해도 이를 충실히 이행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저 시간을 벌어보려는 속셈으로 타협에 응했다. 존 왕은 재빨리 교황의 지지를 얻어 '마그나 카르타'가 불법임을 선포했다. 그러고는 또다시 내란을 일으켰다.

 존 왕은 이번에도 외국 용병을 고용하여 왕궁을 지켰지만, 민심을 잃어버린 왕에게 승산은 없었다. 1216년 5월, 반란 세력은 런던에 진입했고, 누구도 국왕 편에 서는 이가 없었다. 그해 10월 18일, 막다른 길에 몰린 존 왕은 결국 병사하고 말았다.

 존 왕의 일생이 실패와 좌절로 점철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의 마지막 생애 1년은 왕권을 지키기 위한 그의 신념이 승리했다고 볼 수 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존 왕은 결코 '마그나 카르타'의 조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존 왕이 죽자 9세밖에 안 된 그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다. 그가 바로 헨리 3세(1207~1272)이다. 어린 국왕이 국사를 처리할 수 없었기에 반란 귀족들이 섭정위원회를 조직하여 권력을 장악했다.

 헨리 3세는 부왕의 단점만 물려받은 듯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현명한 군주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는 완고하고 의심이 많았으며, 소심한 데다 결단력도 부족했다. 시민들에게 고액의 세금을 거두어 유럽 정벌에 쏟아부었지만 아버지처럼 단 한 번도 승리한 적이 없었다. 결국 유럽 대륙에 남아 있던 얼마 안 되는 영토까지 모두 배상금으로 날리고 말았다.  이에 따라 국민들의 부담과 분노는 날이 갈수록 더해 갔고,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마그나 카르타' 탄생 과정

 국왕과 귀족 사이에는 다음의 세 가지 주요 갈등이 존재했다.

 첫 번째는 '돈'이다. 국왕이 귀족들의 재산을 너무 많이 가져다 쓰는 것에 귀족들은 늘 불만을 품고 있었다.
 두 번째는 '사법권'에 대한 것으로, 국왕이 법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다 보니 공정할 수가 없었다.
 세 번째는 '하사품'에 대한 불만이었다. 국왕은 귀중한 물건이나 토지, 혼인까지도 귀족들에게 하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귀족들은 하사품의 배분이 매우 불공평하다고 느껴지면 언제든 무기를 들고 국왕에 반기를 들곤 했다.

 귀족들이 불만에 가득 찼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12, 13세기 20~30년마다 한 번씩 반역 사건이 터졌다. 그들은 군주를 폐위하고 새로운 국왕을 세우고자 했다. 하지만 1215년 이후에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마그나 카르타'의 조항에서 정당한 반역을 인정함으로써 더 강력하게 왕권을 견제할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마그나 카르타'의 의의

 어떤 면에서 1225년 이후의 '마그나 카르타'는 그 주요 의의를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민중들이 대헌장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지나쳐 버리기 때문에 제대로 실행되기 어려운 탓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엄청난 변혁을 가져왔다. 바로 국왕도 법률에 복종해야 하고, 독단적으로 전횡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국왕이 이를 어기고, 독재정치를 하거나 민중의 재산을 수탈할 때, 혹은 불법적으로 국민을 감금, 살해할 때는 모두 일어나 국왕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 가능했다.

 예를 들면, 1223~1234년에 이 '마그나 카르타'를 수호하기 위한 대규모 봉기가 실제로 발생했다. 이 때문에 1225년 이후에는 영국의 모든 군주가 이 '마그나 카르타'를 정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독재정치가 입헌군주제로 바뀌게 된 순간이었다.

 '마그나 카르타'의 의의는 바로 국왕은 신민의 이익을 위해 통치하며, 국왕도 법을 준수하고 법률에 근거해 행동해야 한다는 데 있다. 이런 사상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싹터 왔다. 1160년대에 '솔즈베리의 존'이라는 사상가는 '통치자의 권력과 이득'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묘사한 적이 있다. 그는 "신민의 이익을 무시하고 법률을 짓밟는 통치자는 바로 독재자이다. 진정한 군주는 국민을 위해 통치하고 법률에 복종한다."라고 설파했다. 사실, '마그나 카르타'는 위의 사상을 구체적인 문서로 작성한 것뿐이라 할 수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사상을 처음으로 문자화하여 기록한 셈이다. 1215년 이전에도 국왕은 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이것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마그나 카르타'에 명시된 이후에는 그 역시도 엄연한 '법률'이 되었고 좀 더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영국의 빅벤
런던에 있는 빅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