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나 카르타, 영국 정치의 정체성을 잡다
1215년 6월 15일, 템스강변의 러니미드 초원에서 존 왕과 귀족 대표 간에 담판이 벌어졌다. 그리고 여기에서 역사적으로 중대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존 왕이 국왕의 권력을 제한하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옹호하는 문서에 조인한 것이다. 귀족들이 랭턴 대주교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이 문서에 대해 존 왕은 불만스럽기 그지없었지만, 결국 귀족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집행인 자격의 남작 25명과 함께 공동으로 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 문서가 바로 우리에게 '대헌장'으로 알려진 '마그나 카르타'이다. 마그나 카르타 자체에는 새로운 요구사항은 없었다. 다만 윌리엄 1세 때부터 200여 년에 걸쳐 불문율로 내려온 국왕과 귀족들 간의 계약 관계를 명확하게 규정한 최초의 법률문서였을 뿐이다.
하지만 마그나 카르타의 탄생은 영국인에게 '솔즈베리 서약' 이래 전해져 내려온 계약 정신을 강화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후 평화적인 담판과 타협의 방식으로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교훈을 주었다. 마그나 카르타의 총 63개 조항은 영국 헌정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근간이 되었다. 군주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마그나 카르타'를 만들었던 귀족들조차도 이 문서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의의를 지니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그나 카르타'의 핵심은 "귀족의 동의 없이 국왕은 임의로 세금을 징수할 수 없으며, 합법적인 판결과 법률의 심판 없이는 누구도 함부로 체포하거나 감금할 수 없다. 타인의 재산을 빼앗는 행위도 금지된다. 누구나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며 함부로 다른 이의 목숨을 빼앗을 수도 없다."라고 명확히 규정한 점이다.
그리고 헌장 말미에서 "국왕이 신의를 어겼을 때는 귀족들이 전 국민과 함께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국왕에게 가책과 강압을 가할 권리가 있다."라는 규정을 두어 헌장 준수에 대해 보장하고 있다.
'마그나 카르타'가 내포하고 있는 개념과 원칙은 시대를 앞서가는 매우 선진적인 가치관이었다. 특히 국민의 자유가 없으면 국가의 자유도 없고, 자유롭지 않다면 국가와 국민 모두 발전할 수 없고 더 나은 미래도 상상할 수 없다는 내용은 오늘날에도 의미심장하다.
'마그나 카르타'의 정수는 바로 법률로써 신민의 재산과 인권을 보장한 것이었다. 또한 신민과 군주와의 계약에서 신민의 저항권을 보장한 것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 두 가지 원칙은 이후 영국 사회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개인의 재산을 보장함으로써 사람들은 사회 발전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신민이 저항권을 갖게 됨으로써 불합리한 제도를 개혁할 혁명의 합법성을 갖추게 되었다. 이것이 향후 영국이 유럽 대륙과는 다른 길을 가도록 바꿔놓았다.
'마그나 카르타'는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합법적인 행위의 지표가 된다. 그리고 헌장의 조인은 국왕의 권력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법률에 따라서만 행사될 수 있다는 것, 즉 왕은 법 아래 있으며 왕의 권력도 법을 넘어서지는 못한다는 원칙을 확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마그나 카르타'가 조인된 13세기 초 유럽은 대부분의 국가가 군주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오히려 '마그나 카르타'를 통해 군주의 권력을 제한할 정도로 앞서서 발전해 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이후 영국의 대약진에 중요한 기초가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존 왕의 굴욕적인 조인 이후, '마그나 카르타'는 역대 국왕들에 의해 여러 차례 파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문서는 수 세기에 걸쳐 그 명맥을 유지해 왔으며,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마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며 영국 역사를 이끌어 왔다.
'마그나 카르타'에는 국왕이 헌장의 각 조항을 충실히 이행하는지를 25명의 남작이 감독한다는 규정이 있다. 그리고 만약 국왕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국민들이 단합하여 국왕의 의무 이행을 촉구하고 강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만했던 존 왕은 이 조항에 대해 마치 25명의 황제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크게 분노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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