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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영국

[영국]#7_실지왕(Lackland) 존, 영국의 왕이 되다

by 티제이닷컴 2024.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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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의 봉건제도

 서유럽의 봉건제도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게르만족이 처음 실시한 제도이다. 이는 토지 분봉에 기초하여 권리와 의무 관계를 설정한 일종의 사회, 경제 제도였다. 이 제도를 통해 각 계층의 귀족들에게 토지가 분배됨에 따라 정치권력과 사법권, 정치적 특권 등도 나누어졌다. 즉, 봉건제도의 본질적인 특성은 바로 분권과 지방화인 것이다.

 이 때문에 서유럽 봉건사회에서는 분열과 대립,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로마 제국'처럼 강력한 통일 제국을 만들고자 했던 서유럽의 왕들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유럽 봉건국가들의 공통점은 토지 분봉과 노역을 기반으로 한 등급제 사회이자 장원제 사회라는 것이었다. 영주와 봉신 간에는 계약 관계가 성립되었고, 각기 다른 권리와 의무를 지녔다. 또 봉신은 또 다른 봉신을 거느릴 수 있었기에 사회는 점점 계층화되어 갔다. 사회 내의 상하관계는 권리와 의무를 기반으로 했고, 한쪽이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권리도 주장할 수 없었다. 이렇게 계약을 위반한 경우 쌍방의 관계는 깨졌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볼 때 봉건사회는 '분권'과 '왕권의 제약'을 뜻한다. 기사와 영주의 관계는 '토지'에 대한 권리와 '충성'에 대한 의무에 국한되지 않고 양쪽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관계이다. 즉, 기사들은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권리를 주장할 수 없었고, 영주들도 그 역할에 충실하지 않으면 기사들이 그를 거역할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영국에서 '마그나 카르타'의 근간이 되고, 영국과 프랑스 등의 의회에 실질적인 기반이 된 사상이 되었다.

 왕권은 줄곧 의회와 법의 견제에 의해 국민의 생명과 자유, 존엄성, 그리고 재산을 함부로 침해할 수 없었다. 한 번은 헨리 8세가 런던 길거리에서 '유토피아'의 저자인 토머스 모어를 우연히 만나자 존경심을 표하기 위해 모자를 벗어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후에 헨리 8세는 종교개혁을 위해 모어를 사형에 처할 수밖에 없었지만 마지막까지도 모어에 대한 존경심은 잃지 않았다고 한다.


무능한 실지왕 존

 '실지왕(땅을 많이 잃은 왕)'이라 불리는 존 왕(1167~1216)에게는 군주로서의 미덕이나 위엄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형  사자왕 리처드 1세(1157~1199)가 왕위에 있을 때, 그는 국왕이 십자군 전쟁에 참전한 틈을 타 여러 차례 말썽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왕위를 찬탈한 모략까지 세우기도 했다. 1199년에 리처드 1세가 프랑스에서 영지 다툼을 벌이다가 사망하자 존에게도 뜻밖의 행운이 찾아오게 됐다. 야심은 컸지만 무능했던 존이 결국 왕위에 등극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와의 전쟁에서는 존 왕의 운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1202년,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는 정략결혼으로 프랑스 귀족 가문과 갈등을 빚던 존 왕을 궁정으로 소환했다. 그러나 존 왕이 프랑스에 영지를 둔 봉신 신분이었음에도 자신의 소환 명령에 불응하자, 필리프 2세는 그의 봉토를 모두 몰수하겠다고 선포했다. 이에 격분한 존 왕은 곧바로 전쟁을 일으켰다.

 존 왕은 미르보에서 프랑스 왕의 지원을 받던 자기 조카 아르튀르와 전투를 벌여 그와 200여 명의 귀족들을 포로로 붙잡았다. 하지만 불가사의할 정도로 우둔했던 존 왕은 이 승리에서 어떠한 정치적, 군사적 이득도 얻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잉글랜드 왕위 계승의 경쟁자이기도 했던 아르튀르를 가혹하게 괴롭혔으며, 심지어 술에 취해 이성을 잃고 그 조카를 살해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또한 포로로 잡힌 귀족들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그중 21명을 굶어 죽게 했다.

 이 일련의 잔학하고 난폭한 행위로 인해 유럽 대륙의 귀족들은 분노에 떨었다. 적개심에 불타던 그들은 프랑스 왕 필리프 2세와 함께 공동의 적인 존 왕을 잉글랜드로 쫓아버렸다. 이렇게 존 왕은 유럽 대륙에 있던 노르망디 등의 영지를 거의 다 잃게 되었고, 이때부터 그에게는 '실지왕'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었다.

 실지왕 존은 자기 영지만 잃은 게 아니라 그를 따르던 많은 잉글랜드 귀족까지도 불운을 겪게 했다. 프랑스에 있던 그들의 막대한 토지 재산 역시 몰수당한 것이다. 이로써 운수 사나운 존 왕은 대륙에서 설 자리를 완전히 잃고, 오랫동안 대륙 땅을 밟지 못했다.

 풍자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존 왕이야말로 진정한 잉글랜드 국왕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정복왕 윌리엄 이후로 잉글랜드는 유럽 대륙에 상당한 영지를 소유하게 되었고, 국왕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유럽 대륙에서 보냈다. 어찌 보면 잉글랜드는 왕국의 한 성에 지나지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실지왕 존이 유럽 대부분의 영지를 잃어버림으로써 그가 재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밑천은 잉글랜드밖에 없게 되었다.

몽생미셸
노르망디 지역에 위치한 몽생미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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