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1세 vs 의회, '권리청원'
찰스 1세는 왕권에 도전하는 의회를 해산시켰다. 그러고는 불법으로 상인들에게 새로운 세금을 징수하고, 젠트리에게는 강제로 대출을 받게 하여 국채를 모집했다. 이에 의회의 반대파는 영세민의 조세저항 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이렇게 왕권과 민권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영국 왕조 사상 가장 격렬한 비극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극의 주인공인 찰스 1세는 스스로 위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1628년, 조세저항으로 수세에 몰린 데다 재정까지 고갈되자 찰스 1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의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하원은 의회가 소집되자마자 찰스의 이런 전횡을 맹렬히 비난하며 특단의 조처를 한다. 바로 국왕을 상대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보장한 '권리청원'을 제출한 것이다.
'권리청원'은 '마그나 카르타'의 원칙을 거듭 천명하면서 법률의 심판 없이 자유민을 구금할 수 없고, 의회의 동의 없이 과세할 수 없으며, 국왕이라도 법정의 유죄 판결의 의하지 않고는 그 누구의 재산도 압류할 수 없다는 것 등을 국왕에게 요구했다.
의회는 35만 파운드를 지원하는 대신 국왕에게서 '권리청원'의 승인을 받아냈다. 빚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찰스 1세로서는 '권리청원'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이듬해 찰스 1세는 너무 적은 액수를 얻어냈다는 생각에 후회하기 시작했다. 국왕은 또다시 의회의 동의 없이 톤세와 파운드세를 부과하여 의회와의 갈등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이에 의회는 국왕을 위해 부당한 세금을 내지 말라고 국민에게 호소하며 나섰다. 찰스 1세는 의회로부터 더 이상 돈을 얻어 쓰기가 힘들다고 판단되자 전령병을 보내 의회 해산을 명했다.
혼란의 와중에 하원은 회의장 문을 봉쇄한 채 하원의장 주재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것은 바로 '국가의 종교를 개종하려고 기도하거나 의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마음대로 세금을 징수하는 자는 국가의 적이므로 전 국민의 타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결의안이 통과되자마자 의회는 찰스 1세에 의해 또다시 강제 해산되었다.
잉글랜드에서 300년 넘게 소집되어 왔던 의회는 이렇게 해산된 후 11년 동안이나 열리지 못했다. 당시 잉글랜드에는 상비군이나 조직을 갖춘 경찰대가 없었기 때문에 자유민으로 구성된 민병이나 민경이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병력이었다.
전통적으로, 영국의 국왕은 신민들의 충성심과 의회의 협조를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려 왔다. 이제 의회가 해산된 마당이니 찰스가 직접 사생결단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독단적인 통치로 잉글랜드에서 전제 정치를 강화해 나갔다.
왕권신수설을 견지하던 찰스에게 의회가 해산되어 좋은 점은 일단 마음대로 세수를 늘릴 방도를 강구할 수 있었고, 각종 벌금을 징수할 구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각종 유망한 무역업을 독점한 다음 매점매석을 통해 돈을 벌어들였다. 평화로운 시기에는 이 정도 수입으로도 왕실 지출을 충당할 만했다.
역사상 이 11년은 '잔혹한 통치'의 시대로 불린다. 고액의 세금 부담과 청교도 박해로 국민들의 원성은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장장 11년간 의회가 열리지 않았음에도 잉글랜드 국민은 수 세기 동안 이어져 온 원칙을 잊지 않고 있었다. 바로 '국왕은 법 아래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른바 '무의회' 시기에 이 원칙에 근거하여 영국의 헌정 문제까지 야기한 하나의 유명한 사건이 벌어졌다.
의회 없는 과세는 불법, 존 햄던 사건
1635년, 찰스 1세는 '선박세'를 신설해 전국적으로 징수하기 시작했다. 이에 젠트리 출신의 존 햄던은 '마그나 카르타'에 따라 의회 비준을 거치지 않고 부과한 선박세는 불법이므로 납부할 이유가 없다며 거부하고 나섰다. 이 납세 거부 사건은 잉글랜드 전체에 일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이 재무 법원에 회부되어 심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햄던의 변호사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왕의 특권도 법률의 제한을 받는다."고 진술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던가. 햄던은 무명의 젠트리에서 하루아침에 국왕의 전권에 도전한 영웅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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