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자유사상을 발전시킨 요소
자유사상 발전과 관련하여 우선 영국이 섬나라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섬나라이기 때문에 외부의 침략이나 공격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 점은 영국이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데 긍정적인 요소였다. 또한 영국은 일찍부터 의회제도를 운영해 왔기 때문에 개방적인 토론과 논쟁, 그리고 언론 활동이 활발하였다. 일상생활에서도 영국인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종교적으로도 신교는 구교인 가톨릭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다. 가톨릭은 근본적으로 전제적인 종교였다. 로마 교황과 추기경들의 결정이 신도들에게 전해지고, 신도들은 성서의 해석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의무가 있다. 실제로 90퍼센트의 사람들은 라틴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라틴어로 쓰인 성서와 종교의식을 유지했다. 이에 따라 영국에서는 영어로 된 성서를 읽고, 영어로 전도하며, 영어로 의식을 진행한다.
전 세계에서는 각기 다른 언어로 쓰인 다양한 성서 번역본이 읽힌다. 이렇게 개방적인 신교 교회에서는 좀 더 많은 자유를 추구하게 된다. 신교는 인쇄 문자로 알려진 종교이기에 언론과 토론의 자유를 더 널리 보급할 수 있었다. 덕분에 신교의 전파는 자유주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유니언 잭 휘날리며
1689년 윌리엄과 메리 부부는 공동으로 왕위에 올랐지만 등극한 지 5년 만에 메리 2세는 천연두에 걸려 죽고, 1702년에는 윌리엄 3세마저 낙마 사고 후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들에게는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메리 여왕의 동생인 앤 공주가 왕위를 물려받아 앤 여왕(1665~1714)으로 등극했다.
그런데 앤이 즉위하기 전에 그녀의 유일한 아들이 요절하는 바람에 왕실의 대가 끊기게 되었다. 이후 앤 여왕마저 죽는다면 왕위는 가톨릭교도인 제임스 2세의 아들 에드워드에게 돌아갈 판국이었다. 그토록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의회는 윌리엄이 병석에 있을 때인 1701년, '왕위계승법'을 통과시켰다.
즉, 제임스 1세의 하노버계 후손을 포함한 신교도만 잉글랜드 왕이 될 수 있도록 법에다가 명시해 놓은 것이다. 이로써 왕실은 그나마 있던 권위마저 더 축소되어 이제는 후계자 선택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가톨릭교도를 국왕으로 만드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영국인의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이렇게 왕위계승법을 거쳐 선택된 후계자는 독일 하노버 왕가의 게오르크 루트비히였다. 그가 앤 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조지 1세(1660~1727)이다. 이렇게 스튜어트 왕조시대는 막을 내리고 하노버 왕조시대가 왔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왕조 교체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합병한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스튜어트가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왕위에 오른 1603년부터 양국은 한 명의 군주가 다스려 왔다.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독립적 지위를 유지하며 자체적인 정부, 의회, 법률 등을 가질 수 있었다.
1707년, 양국은 '연합법'에 조인함으로써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갈등관계를 청산하게 되었다. 이는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앤 여왕의 사후에 에드워드가 스코틀랜드를 통해 잉글랜드를 공격하거나 정통성을 들어 스튜어트 왕조를 재건하려는 기도를 사전에 봉쇄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합병 후의 새로운 국가는 '그레이트브리튼 연합왕국'으로 명명되었다. 영국인들은 국기를 새로 만드느라 고민하지 않고, 간단하게 양국의 국기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이것이 이른바 '유니언 잭'으로 불리는 영국 국기이다.
당시의 영국 국기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그것은 잉글랜드의 성 조지 십자가(적색)와 스코틀랜드의 성 앤드류 십자가(백색)의 '연합' 형태였고,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 십자가(적색 대각선)는 100년이 흐른 뒤에야 합쳐지게 된다. 유니언 잭과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는 이렇게 영국이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후 200년 동안 유니언 잭과 백파이프 소리는 연합왕국이 대외전쟁을 벌일 때마다 영국 군인들과 함께 전 세계를 누비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 국민들의 희생을 담보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는 칭호를 얻음으로써 영국은 '제국주의'의 대명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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