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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영국

[영국]#60_빅토리아 여왕, 세상을 평정하다

by 티제이닷컴 2024.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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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의 시대

 1839년, 러시아의 젊은 황태자 알렉산드르가 빅토리아 여왕의 스무 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런던을 방문했다. 21세의 황태자는 아주 준수하고 우아한 귀공자였다. 젊은 여왕은 곧 마음이 흔들렸고 궁전에서 벌어진 무도회에서 그와 춤을 추기도 했다. 후에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 여왕은 총리의 부인에게 알렉산드르에게 큰 매력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은 곧 친한 친구가 되었다.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은 정치적인 이유로 자신의 감정을 희생해야 했다. 여왕이 러시아 황태자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안 영국 정부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들은 러시아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고, 곧 대영제국에 큰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로맨스의 결과는 아주 싱겁게 끝이 났다. 1840년 1월, 빅토리아 여왕은 그녀의 사촌인 앨버트 공과 결혼하겠다고 발표했다. 젊은 빅토리아가 이 소식을 공표할 때의 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이 소식을 들은 총리와 정치계 인사들은 비로소 불안과 근심을 떨칠 수 있었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결혼식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의 결혼식


 현명한 여왕은 자신의 결혼과 남편에 대해 곧 적응했고, 여왕 부부는 윈저성에서 신혼을 보냈다. 후에 여왕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았던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라고 말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총 9명의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근친결혼으로 인해 4명의 왕자 중 3명이 혈우병 환자였다. 5명의 공주는 모두 건강하고 아름다웠지만 역시 혈우병 유전인자를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그녀들과 결혼한 유럽 왕실에도 이 무서운 병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가장 많은 식민지를 보유했던 황금기였다. 여왕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국제적인 정치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여왕의 아름다움, 온화함, 고귀함 등은 하나의 정치적 포장에 불과했다. 그녀는 음모와 계략, 거래와 강권, 무력 점령 등의 수단을 구사했고 이는 '훌륭한 업적'으로 재탄생했다.

 1857년,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수에즈 운하의 운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점점 표면화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교묘한 계략으로 영국이 운하의 관리권을 가져가 버리자 프랑스는 빈손으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1858년, 영국은 인도에 대한 간접통치를 끝내고 식민 통치를 시작했다. 이로써 인도는 대영제국의 왕관 위에서 또 하나의 구슬로 빛을 발하게 되었다.

대영제국은 로마노프 왕조의 러시아 제국과 그레이트 게임이 한창이었다. 그녀는 러시아가 1877~1878년에 투르크와의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날려버렸다. 당시 러시아 군대는 이스탄불의 지척에 주둔하고 있었고, 러시아와 투르크는 쌍방 협의를 체결하던 중이었다. 러시아는 투르크로부터 발칸 반도의 일부를 빼앗을 속셈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발칸 반도에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빅토리아 여왕은 '무력'과 '외교력'을 동원해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러시아는 발칸 반도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승리는 대영제국으로 돌아갔다.

 앨버트 공은 유난히 과학기술에 많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덕분에 빅토리아 여왕이 발명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당시 영국 북부지역에는 이미 철도가 부설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왕은 기차 타는 것을 무서워했고, 이는 국왕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다. 앨버트 공은 여왕에게 철도 운송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그 결과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의 산업화를 촉진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빅토리아 시대와 대영제국의 확장

 빅토리아 시대에 영국은 아주 많은 변화를 겪었다. 산업혁명이 일어남에 따라갈수록 노동자와 공장주가 늘어났고, 이들은 신흥 중산층이 되었다. 이들은 상류층의 생활방식을 따라 하고 싶어 했다. 도시가 끊임없이 확장되고, 인구가 대량으로 유입되었다. 공장주들은 공장 근처에 집을 마련했고, 노동자들도 도시로 모여들어 그곳에 거처를 마련했다. 당시 대영제국은 세계 각국에서 수입되는 상품들로 흥청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식민지 국가들은 기꺼이 영국의 통치를 받아들였다. 영국인은 거대해진 대영제국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조국을 자랑스러워했다. 게다가 교육을 받은 덕분에 신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점점 많아졌고, 신문의 종류도 점차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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