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번성을 세계에 알려라, 만국박람회
1851년, 앨버트 공의 건의로 런던에서 제1회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다. 그해 런던의 하이드파크에는 신기하게 생긴 건축물이 등장했다. 강철과 유리로 만들어진 이 건물은 전통적인 건물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그것은 철골로 지지대를 만들고 천장과 벽면을 온통 큰 유리로 장식한 만국박람회의 대형 전시관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 건물을 크리스털 궁이라고 불렀다. 이 획기적인 건축물은 현대의 유리온실 전시관의 표준이 되었다. 크리스털 궁은 강철과 유리 건축 설계로 유명한 조지프 팩스턴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 신비로운 건물을 볼 수가 없다. 1936년 11월 30일 밤에 일어난 대화재로 모두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현재에는 당시 그려진 그림들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을 보면 전시관은 오로지 강철과 유리로만 제작되어 있어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고, 안에서도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투명한 건물이었다. 이는 당대 유럽에서 가장 웅장하고 상상력이 빛나는 건축물로 평가된다.
1851년 5월 1일, 세계의 25개국의 정계, 재계 대표들이 이 크리스털 궁에 집결했다. 유례없는 규모로 진행된 이 대회의 정식 명칭은 '만국 산업생산품 대박람회'였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군사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혹은 정치문제를 토론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문명과 진보, 번영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이 박람회에는 인류 문명의 발전을 보여주는 10만여 개의 물품들이 전시되었다. 이는 세계 각지에서 약 1만 4,000명의 참가자가 제공한 것으로 절반 이상이 영국 제품이었다. 전시장에서는 산업혁명을 통해 발명된 선진적인 공업품, 즉 증기기관, 고속증기선, 기압계, 기중기, 절삭기계 등과 진보적인 제련법, 수로 및 교량 건축법 등이 소개되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은 이 박람회를 통해 자국의 선진기술을 마음껏 과시했다.
만국박람회가 개막하던 날, 런던 전체는 축제 분위기로 들떴다. 국민들의 함성 속에서 빅토리아 여왕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도도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수정궁의 개막 테이프를 잘랐다. 들떠 있던 여왕은 "영광, 영광, 무한한 영광입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행사를 마친 그날 저녁, 32세의 빅토리아 여왕은 일기에 "영국 역사상 가장 성대하고, 또한 가장 아름답고 영예로웠던 날이다."라고 기록했다.
국왕으로서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1861년, 한창나이인 앨버트 공이 장티푸스에 걸려 숨을 거두었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견딜 수가 없었고, 모든 것을 다 잃은 듯했다. 한 여인으로서는 깊이 사랑했던 남편을, 국왕으로서는 지혜로운 책략가를 잃은 것이었다.
앨버트 공이 세상을 떠난 날, 빅토리아 여왕은 "당신의 죽음은 너무나도 큰 비극이에요. 이제부터 내 인생은 갈기갈기 찢겨 나가겠지요."라고 일기에 썼다. 절망에 빠진 빅토리아 여왕은 윈저궁 깊숙이 은둔해 버렸다. 그녀에게 이제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곳이었다. 그녀는 친척에게 보낸 편지에 세상은 이미 죽어버렸다고 쓰기도 했다.
남편을 잃은 충격에 빠진 여왕은 자기 몸도 가눌 수 없는 미망인에 불과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명예 국왕'의 자리를 지켰기에 오늘날 영국인들이 그토록 잊지 못하는 '빅토리아 시대'가 탄생한 것이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은 세계 최강대국으로 등극했고, 전 세계를 굽어보았다. 이때는 영국의 경제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당시의 한 작가는 전 세계 시장에서 영국 제품을 얼마나 갈구하는 지를 다음처럼 묘사했다. "인도에는 도끼, 북아메리카의 토착민들에게는 전투용 도끼를 공급했다. 쿠바와 브라질에는 가난한 노예에게 쓰는 멍에와 수갑, 그리고 목줄을 팔았다. 미국의 원시 삼림에서는 버밍엄 산 도끼로 고목들을 잘라냈고, 오스트레일리아의 방목장에서는 버밍엄 산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인도와 서인도에서는 사람들이 버밍엄 산 호미로 밭을 일구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종말, 기우는 대영제국을 고하다
하지만 대영제국이 가장 눈부시게 빛나던 이때를 정점으로 태양은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성대한 장례식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폐막식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대영제국의 번영은 방대한 해외식민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제국의 쇠퇴를 재촉하는 씨앗이 되었다. 영국에 막대한 자원을 공급해 주던 해외식민지는 점차 영국의 큰 부담이 되고 있었다. 거대한 식민지를 지배하느라 국력을 소진해 온 영국은 막대한 자원과 재산을 쉽게 얻는 대신, 영국인 특유의 창조력과 사회의 활력을 잃어버렸다.
영국에 이어 산업혁명을 이룬 독일과 미국은 후발주자의 이점을 이용해 선두로 치고 나아갔다. 하지만 자유시장 경제의 모순이 더 큰 골칫거리였다. 오로지 보이지 않는 손에만 의존했던 영국 경제는 20세기 들어서 아주 쓰디쓴 교훈을 얻었다.
환상에서 깨어난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제국이 몰락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태양이 대서양 끝에 있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떠오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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