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종교계의 새 바람이 불다
프랑스에는 16세기 초부터 종교계 내부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하려는 혁명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그 당시 종교계를 주도하던 가톨릭교는 자신들의 종교 교의, 계급제도 및 각종 번잡한 종교의식 등이 자본주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판단, 이미 시대에 도태된 개념이 되어 있었다. 시대는 신흥 자산계급을 중심으로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새로운 종교를 창설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프랑스 최초의 신교는 루터파였다. 1520년대에 프랑스에는 이미 많은 수의 루터파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프랑스 신교의 절대다수로 칼뱅파가 자리를 잡게 된다. 일찍이 신학을 공부한 장 칼뱅(1509~1564)은 1533년에 신교로 개종하고, 그다음 해에 프랑스 정부의 박해를 피해 스위스로 피신한 후 그곳에서 종교개혁을 주도하게 된다. 그는 정교 합일을 주장하며 장로와 집사 등이 관리하는 공화제 교회의 조직을 역설했다. 그가 저술한 '그리스도교 강요'는 출판되자마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선민만이 하나님에 의해 구원된다고 믿었다. 여기서 선민이란 각자 제 일에서 성공한 사람을 지칭했다.
칼뱅교는 위그노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급진적인 자산계급의 요구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프랑스 하층 자산계급의 열렬한 옹호를 받았다. 하지만 남부의 소수 대귀족도 이에 동참했다. 칼뱅파는 칼뱅교 공화제를 조직하여 중앙집권적인 전제왕권에 대항하면서 세력을 키워나갔다. 1562년에는 프랑스 각지에 신교도가 폭넓게 분포하여 전체 신도 수가 프랑스 인구의 4분의 1에 육박했다. 여기에는 대략 프랑스 귀족의 절반, 그리고 도시민의 3분의 1 정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프랑스 교회의 통일은 곧 정치적인 통일이었다. 그러나 신교는 줄곧 이단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지하조직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프랑수아 1세 이후 역대 국왕들은 신교에 대해 탄압 정책을 펼쳤다. 특히 1530년대부터 박해가 더욱 심해지고, 1547년에 앙리 2세(1519~1559)는 파리 고등법원에 신교도 박해를 위한 전문 법정을 설립했다.
16세기에 이르자 신·구교 간의 다툼을 둘러싸고 교회는 세 진영으로 분열되었다. 그 첫 번째는 대귀족 기즈공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 진영으로, 주로 프랑스 북부와 동부에 집중되어 있었다. 두 번째는 부르봉가와 콩데가 및 콜리니 제독을 중심으로 한 신교도 진영으로, 그 주요 세력은 프랑스 서부와 서북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세 번째는 궁정 귀족과 기즈가에 반대하는 가톨릭 귀족을 중심으로 한 세력으로, 이들은 정치가 진영으로 불렸다.
이때 봉건 귀족들은 신·구교 간의 충돌을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으로 변질시켰다. 1562년 3월, 가톨릭 세력의 수장이었던 기즈 공이 바시라고 하는 작은 마을의 교회에서 미사를 올릴 때, 그의 수행원들과 신교도인 위그노라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신교도가 던진 돌이 기즈 공에게 날아가자 신교도를 살해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1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신교도는 즉시 반격을 감행, 콩 데가 이끄는 군대가 오를레앙을 점령함으로써 프랑스 종교전쟁(위그노 전쟁, 1562~1598)이 시작되었다.
신교와 구교의 싸움
30년 넘게 지속된 이 처절한 싸움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기즈 공은 1562년 루앙을 점령한 후 온 도시를 강탈했다. 그는 구교와 신교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약탈과 살육을 자행,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과연 이 전쟁이 '종교전쟁'이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 당시 왕실은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손에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1572년 8월 22일, 신·구교 화합의 상징으로, 신교도의 수장이었던 방돔 공작 앙투안의 아들이자 나바라 왕이었던 앙리와 마를 그리트 공주의 결혼식이 거행되자 많은 신교도가 파리를 방문하게 된다. 그러나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인 8월 24일 밤, 카트린 왕비와 샤를 9세의 묵인하에 기즈가의 앙리와 가톨릭교도들은 파리의 모든 성문을 닫아걸었다. 그러고 나서 교회의 시계 소리를 신호로 해서 신교도에 대한 학살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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