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233 [스페인] 펠리페 2세, 스페인 국왕이 되다 펠리페 2세(재위 1556-1598)의 제국은 카를 5세의 체계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러나 펠리페 2세 때부터 스페인풍 정치가 이루어졌고 황제 주변 측근도 모두 스페인인이었다. 펠리페 2세는 국왕으로서 매우 검소하고 시간을 준수하는 등 규범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일 처리에 빈틈이 없었기에 몰인정한 면모도 보였다. 국왕의 측근들은 스페인의 이익을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고, 스페인의 왕들은 대대로 펠리페 2세를 높이 칭송하고 존경했다. 그는 집권한 20여 년간 언제나 신중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정열적이고도 치밀한 성정 때문인지 그의 통치 기간 중 스페인 국력은 최고 절정에 이르렀다.펠리페 2세의 지중해 155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유스테 수도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전, 그의.. 2024. 5. 24. [포르투갈] 남아메리카 브라질 점령기 포르투갈, 브라질을 발견하다 마젤란은 세계 일주 항해를 하면서 배를 수리하기 위해 남아메리카 브라질 해안에 여러 번 기착했다. 당시 스페인 해군력은 포르투갈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마젤란은 매번 포르투갈 군함의 추격을 경계해야 했다. 마젤란은 이곳에서 항상 부하들에게 포르투갈의 영토임을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브라질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에서 정한 경계선 동쪽 포르투갈 범위 안에 있기 때문에 스페인 함대가 함부로 이 지역을 들어오면 안 되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새로운 아메리카 점령지였다. 이곳은 훗날 포르투갈의 제2의 고향이 되었다. 1500년 3월 8일, 다 가마가 동방 항로를 발견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군함 13척으로 구성된 함대가 선원 1,200명을 태우고 테주강을 출발했다. 이들의 항해 목표.. 2024. 5. 23. [스페인] 마젤란, 인류 최초로 세계 일주 항해를 하다 고요한 바다 태평양 카를 5세 시기, 스페인에 가장 큰 영예를 가져다준 사람은 바로 마젤란(1480-1521)이다. 그는 스페인을 위해 향료제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했고, 인류에게 새로운 세계관을 심어주었다. 마젤란은 5척의 함대로 인류 최초로 세계 일주 항해를 실현했다. 1520년 마젤란 함대는 버진곶을 경유 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통로 마젤란 해협에 진입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 38일 동안 마젤란 함대는 작은 섬과 해구 사이를 항해한다. 다시 남아메리카 서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운 좋게 북동 무역풍을 만났다. 마젤란 해협을 통과한 후 이들은 단 한 번도 폭풍을 만나지 않았다. 바다는 너무나 고요하고 잔잔했다.인류 최초 세계 일주 항해 16세기 초, 스페인 사람들은 이.. 2024. 5. 22. [스페인] 피사로와 잉카 제국 두 번째 이야기 - 잉카 멸망 피사로의 금과 은을 한 방 가득 채우라는 명령이 있고 5개월간 잉카 제국의 온갖 아름다운 금은 장식품이 카하마르카 성으로 운반되기 시작했다. 피사로는 이 장식품의 예술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성안에 단야로를 만들어놓고 각지에서 운반해 온 금을 녹여 금괴로 만든 후 공평하게 분배했다. 그러나 아타우알파와의 약속을 피사로는 지키지 않았다. 당시 상황이 아타우알파의 죽음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이즈음 일부 잉카 원주민들이 스페인을 공격해 국왕을 구해낼 것이라는 소식이 들리는가 하면 국왕이 이미 밀지를 내려 반란을 일으킨 동생 우아스카르를 죽이라고 했다는 말들이 들려왔다. 이에 피사로와 스페인 군대는 결국 아타우알파를 죽이기로 결정했다. 피사로는 아타우알파에게 화형과 가톨릭 세례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2024. 5. 21. 이전 1 ··· 17 18 19 20 21 22 23 ··· 5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