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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233

[러시아사]#44_러시아혁명 이전, 점점 커져가는 볼셰비키 세력 레닌의 혜안 사실 볼셰비키 내부에서도 레닌을 지지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스탈린과 카메네프가 창간한 '프라우다'(진리라는 뜻의 공산당 기관지)에서도 임시 정부에 대한 태도는 모호했다. 어쩌면 이처럼 역사가 베일을 벗기 전에 그 모습을 파악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역사가 가진 가장 매력적인 점일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가 닥치면 그저 조급한 마음으로 역사의 결정을 기다린다. 또한 한편으로는 남다른 안목을 가진 이를 비웃으면서 자신은 결코 역사의 낙오자가 아님을 증명하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사는 레닌의 생각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1917년 7월, 임시 정부는 '동맹국에 대한 의무 이행'을 내걸고 러시아군의 출전을 명령했다. .. 2024. 2. 26.
[러시아사]#43_임시 정부와 소비에트의 정권 겨루기 임시 정부에 대한 치솟는 불만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강에는 유명한 배 한 척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와 함께한 이 순양함의 이름은 '오로라'였다. 이 배의 대포는 1917년부터 줄곧 겨울궁전을 조준하고 있다. 1917년 11월 7일, 순양함 오로라가 내뱉은 굉음과 함께 러시아의 역사는 새로운 페이지를 쓰게 됐다. 하지만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쓰는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1917년 2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지 4년째에 접어들면서 러시아인들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페트로그라드에서 노동자들과 군인들에 의해 발발한 2월혁명으로 인해 300년이나 러시아를 통치했던 로마노프 왕조가 붕괴한 이후 러시아에는 두 개의 정부가 출현해 혼란을 빚고 있었다. 하나는 자산 계급이 세운 임시 정부였고, 다.. 2024. 2. 25.
[러시아사]#42_레닌, 러시아 역사에 등장하다 레닌의 탄생 레닌이라는 이름은 시베리아의 큰 강인 레나강에서 따온 것이었다. 17세에 혁명에 가담했던 이 청년은 27세에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나면서 자신의 이름을 레닌으로 바꾸었다. 19세기의 데카브리스트 이래로 레나강은 차르 통치에 반대하고 러시아 민족의 흥성을 위한 길을 모색하다가 이곳으로 추방당한 혁명가들을 넓은 가슴으로 품어왔다. 시베리아의 혹한 속에서도 혁명가들은 러시아의 노선에 대한 자신들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그들은 도도하게 흐르는 이 강가에 서서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며 수없이 많은 날을 보냈다. 이 때문에 레나강은 러시아 혁명가들의 마음속에 독특한 의미로 자리 잡았다. 레나강은 조국의 번영에 대한 민족의 염원과 갈망을 상징했다. 이러한 이유로 레닌은 레나강에서 이름을 따 자신의 이름으로 .. 2024. 2. 14.
[러시아사]#41_1차 세계대전과 2월 혁명, 러시아를 뒤흔들다 1913년 러시아의 석탄 생산량과 면화 가공량은 1900년에 비해 각각 121퍼센트와 62퍼센트의 성장률을 보였다. 수출 총액과 국민 소득 역시 각각 112퍼센트와 78.8퍼센트로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1인당 식량 생산 역시 최대치를 기록했다. 1914년에 이르자 러시아는 세계 6대 무역 대국, 그리고 세계 4대 공업 대국으로 급부상했다. 1909년에 스톨리핀은 한껏 자랑스럽게 말했다. "앞으로 20년 동안 국내외적으로 평화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때 러시아의 모습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모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러시아에 그와 같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미 수명이 다된 다른 왕조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역시 스톨리핀의 출현만으로는 잿빛 운명을 피할 수는 없었다.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191.. 2024.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