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유산
유럽 지도를 펼쳐보면 서유럽 대륙 건너편에 자리한 두 개의 큰 섬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그레이트브리튼이고, 다른 하나는 아일랜드다. 그레이트브리튼 섬 전체와 아일랜드 북부 및 주변 섬들을 합친 것이 바로 '연합왕국(United Kingdom)', 즉 우리가 흔히 '영국'이라고 부르는 나라이다.
북대서양의 험하고 거친 파도 가운데 떠 있는 섬나라 영국은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총면적은 약 24만 제곱킬로미터이며, 어떤 지방이든 해안선까지의 거리가 120킬로미터를 넘지 않는다. 17세기말에 600만 명 정도이던 인구는 오늘날에는 대략 6,800만 명 정도이다.
지도나 수치상으로만 본다면 그다지 크지 않은 나라가 어떻게 과거 수 세기 동안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전 세계를 호령하면서 세계 최고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근대사에서 영국이 세계 각지에서 행했던 제국주의적 침탈 행위를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나라가 세계 역사상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영국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세계의 정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의 과거 업적과 문명, 역사적 자원은 여전히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아편전쟁을 치른 지 1세기 반이 지난 1997년,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반환됨으로써 영국의 아시아 지배는 완전히 종식되었다. 영국의 다른 해외 식민지들 역시 대부분 독립하거나 주권을 가진 영연방 국가로 교체되었다. 과거의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은 역사 속에서 월계관을 쓰고 있을 뿐, 그 영광은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다.
사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는 동안에도 영국에서는 준비된 청사진 한 장이 제대로 있지 않았다. 더욱이 십자군처럼 종교적 대의명분을 내세우지도 않았고, 독일 파시즘의 '생존권'이나 일본 군국주의의 '공영권' 주장처럼 민심을 현혹해 대중을 선동하는 그 어떤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중국의 역사학자 황런위는 "1세기 동안의 혼란을 거친 후 스튜어트 왕조 말기에 우연히 현대로 발전하는 비밀의 문이 열렸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그저 모든 것이 운 좋게 맞아떨어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역사학자 말에 따르면, 영국은 외세에 떠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일어서서 발전한 '자발형' 현대화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즉,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경제가 발전하고, 이에 따라 세계 시장을 개척해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완성된 현대국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영국을 가리켜 나폴레옹은 '작은 가게 주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쩌면 역사는 이 모든 것이 이미 정해진 수순대로 일어나도록 흘러왔는지도 모른다. 영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됨에 따라 이를 가능하게 했던 문명이 오늘날 세계 문명의 주류가 되었다. 바로 이것이 많은 나라들이 배우고자 하는 일종의 선진 문명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선진 문명이 그 밖의 문명에 끼치는 압박과 부담 또한 지대하다. 오늘날 대다수 문명이 어쩔 수 없이 서구화로 전환하고 있으며,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영어가 필수 과목으로 학습되고 있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것의 유산은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저항으로 시작된 역사
영국 역사에서 그 시작은 그다지 영광스럽게 그려지지 못했다. 고대에 이곳을 정복했던 로마 제국의 카이사르는 섬에 거주하던 브리튼족을 '야만족'이라 칭하기도 했다. 브리튼은 바로 이 부족의 이름에서 유래하며, 잉글랜드라는 말은 현대 브리튼 민족의 언어체계에 보다 근접하는 6세기에 들어서야 비로소 나타났다.
유럽 대륙 한 모퉁이에 떨어져 있는 브리튼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유럽에 비해 문명 수준이 많이 뒤떨어져 있었다. 당시 유럽 대륙 사람들은 해협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브리튼 섬 해안의 백악 절벽지대를 가리켜 '앨비언'이라고 불렀다. 라틴어로 '하얀색'을 뜻하는 이 말은 영국을 지칭하는 최초의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역사 초기에 로마 제국의 지배에 끈질기게 저항하던 영국은 6세기에 이르러 잉글랜드 민족이 등장하면서 여명기를 맞이하게 된다.
'역사학 > 영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국]#5_윌리엄 1세와 솔즈베리 서약 (0) | 2024.06.17 |
---|---|
[영국]#4_정복왕 윌리엄 1세 (0) | 2024.06.16 |
[영국]#3_1066년, 영국 역사의 변곡점 '왕위쟁탈전' (0) | 2024.06.14 |
[영국]#2_브리타니아-로마 제국의 속주 (0) | 2024.06.13 |
[영국]#1_카이사르-브리튼 전기 (0) | 2024.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