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잉글랜드의 왕이 되다
영국의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윌리엄은 군대를 이끌고 상륙하면서 배에서 내리다가 발을 헛디뎌 엎어지고는 오히려 "잉글랜드를 이 손안에 넣었다."라고 큰소리치며 일어났다고 한다. 그가 잉글랜드 정복에 얼마나 들뜨고 집착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침략자들은 보름 동안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동쪽으로 진격하여 서식스의 헤이스팅스에 이르렀다. 이윽고 윌리엄이 이끄는 5,000명의 정예부대와 헤이스팅스의 산등성이에 진지를 구축한 7,000명의 해럴드 측 군사 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렇게 반나절 가까이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해럴드가 조직한 방어진이 마치 견고한 석벽처럼 큰 위력을 발휘하면서 윌리엄의 군대는 하루 종일 화살과 기병대의 공격을 번갈아 퍼붓고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다.
해가 질 무렵, 윌리엄은 군사들에게 후퇴하는 척하라고 지시했다. 적군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기 위한 유인책이었다. 윌리엄은 우세한 기병대를 지휘하여 잉글랜드 군을 진지에서 끌어낸 뒤 포위해서 섬멸하는 작전을 펼쳤다. 밤이 되어 잉글랜드 군의 방어선이 점차 허물어지기 시작하자 그 틈을 타 윌리엄의 군대는 적군의 핵심 진지를 치고 들어갔다.
혼전이 벌어지던 중에 해럴드 2세가 화살을 맞고 숨을 거두었다. 국왕의 깃발이 쓰러져 짓밟히자 잉글랜드군은 순식간에 붕괴하였다. 결국 계략과 용기, 행운의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윌리엄이 그 자신과 잉글랜드의 운명이 걸린 이번 모험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해럴드 국왕과 그의 군대가 보여준 용맹성은 후세에까지 전해져 내려오면서 영국적인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게 되었다.
1066년 크리스마스에 윌리엄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국왕 대관식을 거행했다. '서자 윌리엄'이라 멸시받던 노르망디 공이 마침내 잉글랜드 국왕 윌리엄 1세(1027~1087)로 등극한 것이다. 후세 사람들은 노르만 정복을 성공한 그를 '정복왕 윌리엄'이라고 부른다.
정복왕 윌리엄
윌리엄의 정복 전쟁에는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한다거나 하늘의 복음을 전파한다는 등의 숭고한 동기는 전혀 없었다. 그 때문에 수 세기 후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유명한 사상가인 토머스 페인은 윌리엄에 대해 "프랑스의 일개 떠돌이가 무장한 도적 떼를 이끌고 잉글랜드를 침략한 뒤, 이 나라 국민의 의지를 짓밟고 왕위를 차지한 데 대해 우리는 비천한 짓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라고 신랄하게 혹평했다.
그는 또 "윌리엄 1세는 불온한 패거리의 악랄한 우두머리이자 잔인한 행동과 음험한 수단으로 승리를 훔친 도적 떼 두령일 뿐이다. 그는 세력을 넓히고 약탈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힘없는 양민에게 안전을 구실로 재물을 바치도록 강요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처음에는 잉글랜드인이 아니라 바로 정복자 자신이 위협을 받았다. 아직 정복되지 않은 땅이 더 많았을 때였기에 침략자들은 저항 세력에 둘러싸여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에 윌리엄은 통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자신을 따르는 대륙의 노르만 귀족들을 불러들여 요직에 중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유럽 대륙의 봉건제를 잉글랜드에 들여오고 나서 '국왕은 모든 토지에 대한 유일하고도 최종적인 소유자'라고 선포했다. 그러고는 명의상의 소유를 사실상의 소유로 바꾸면서 전국의 삼림과 경작지의 6분의 1을 자신에게 귀속시키고, 나머지는 교회와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당시 윌리엄 1세로부터 직접 봉토를 받은 봉신은 1,400명에 달했고 이들은 다시 토지를 아래로 분봉하여 자신들과는 등급이 다른 봉신으로 삼았다. 그들을 통칭해서 흔히 봉건 귀족이라고 한다.
하지만 윌리엄은 여전히 토착 잉글랜드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밤낮을 고민한 끝에, 마침내 왕권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아주 독창적인 방법을 생각해 냈다. 노르만 정복에서부터 영국 땅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윌리엄 1세는 최악에서 최선을 끌어내며 이렇게 새로운 전통을 하나씩 수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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