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즈베리 서약
잉글랜드 남부 윌트셔에 자리한 소도시 솔즈베리는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고도이다. 또한 선사시대의 거석 기념물인 스톤헨지가 발견되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도시이기도 하다.
스톤헨지는 수십 톤에 달하는 무겁고 거대한 돌기둥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 구조물이다. 이 유적에 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누가 어떤 방법으로 건조했는지, 그리고 그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인해 스톤헨지는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로 신비한 후광과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영국 역사를 좀 더 이해하게 된다면 이 소도시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 스톤헨지 못지않은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1086년 8월 1일, 정복왕 윌리엄은 잉글랜드에서 토지를 보유한 모든 봉건 귀족을 솔즈베리에 모이도록 했다. 이곳에서 그는 충성을 선서하는 의식을 거행하면서 토지 소유자들이 누구의 봉신이든 그들 모두에게서 국왕의 신하로 복종한다는 충성의 서약을 직접 받아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솔즈베리 서약'이다.
천 년 가까이 지난 역사이기에 우리가 당시 이곳에서 벌어진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낼 수는 없다. 유일하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당시의 봉신들이 충성을 서약할 때 마음은 몹시 불편했을 거라는 점이다.
서약식은 봉신들이 모자를 벗고 한쪽 무릎을 꿇은 다음 양손을 내밀면 윌리엄 1세가 그 손바닥을 한데 모으는 것으로 국왕의 봉신이 되는 간단한 의식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부터 그들은 자신의 주군만 아니라 국왕에게도 충성을 다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
봉건 귀족의 충성 맹세, 왕권의 기틀을 다지다
유럽 대륙의 봉건제 전통에 따르면, 봉신은 자신에게 직접 봉토를 하사한 주군에게만 충성을 바치고, 주군의 주군에게까지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 '나의 봉신의 봉신은 나의 봉신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바로 이 원칙으로 인해 왕권은 추락하고, 봉건 제후들은 비옥한 토양을 조성하여 할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윌리엄이 유럽 대륙의 봉건적 전통을 뒤엎는 획기적인 조처를 한 것이다. 그는 단지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사적 목적으로 시행했을 뿐이었지만, 이는 잉글랜드의 지배구조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에는 노르만 정복자와 잉글랜드의 피정복자 사이의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수적으로 절대 열세인 지배자들이 강력한 왕권에 기대어 기득권을 보장받기 위해 일치단결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왕권은 보다 강력해졌고, 잉글랜드의 봉건 귀족들은 윌리엄 1세에게 종속되었다.
국왕은 봉토를 귀족들에게 분봉해 주고, 그에 대한 대가로 귀족들은 왕에 대한 충성을 서약했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봉토의 크기에 따라 국왕에게 세금을 납부하고, 기사 및 기타 장비도 제공해야 했다. 이를 바탕으로 윌리엄 1세는 국가권력의 한 상징으로서 5,000여 명으로 구성된 기사군을 창설했다. 잉글랜드의 귀족계급과 제도는 이렇게 형성되었다.
국왕과 귀족 사이의 종속 관계는 쌍무적 계약의 성격을 띠었다. 즉, 권리와 의무에 바탕을 둔 일종의 계약 관계였다. 12세기 말 한 법학 논문에는 이 관계에 대해 "주군과 봉신 간에는 마땅히 상호 충성할 의무가 있다. 존경을 제외하고는, 주군에 대해 봉신이 복종해야 한다고 해서 봉신에 대해 주군이 가진 권리가 더 많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성문화된 법률은 없었지만, 국왕과 귀족 사이의 계약 관계는 관습법의 형태로 지속되어 왔다. 계약의 규정에 비추어 쌍방은 각자의 의무를 이행하고 자신의 권리를 누린다는 것이 점차 영국 사회의 보편화된 규칙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비록 불평등한 요소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이러한 계약 정신은 이후에 등장한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를 비롯해 의회정치와 관습법 체계를 세우는데 기초를 다졌다.
정복왕 윌리엄이 솔즈베리에서 자신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충성 서약을 하는 봉신들을 지켜볼 당시에는 이 솔즈베리 서약이 수백 년 후 대영제국이 세계를 제패하는 원동력이 되리라고는 아마 그조차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봉신들의 충성 서약을 받아낸 윌리엄은 한 사건으로 인해 대규모 경제조사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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