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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영국

[영국]#6_'둠즈데이북', 더 많고 확실한 세금을 거두기 위해 토지를 정리하다

by 티제이닷컴 2024.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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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조사대장 '둠즈데이북'

 1085년, 덴마크 국왕 크누트 2세가 잉글랜드 침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수백 년 동안 잉글랜드는 바이킹 해적들의 잦은 침략에 시달리던 불운의 땅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덴마크가 국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잉글랜드 침략계획을 포기하면서 곧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윌리엄 1세는 이 땅의 국왕으로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급선무는 잉글랜드의 경제 상황을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었다. 세금을 정확히 징수하여 국가와 군대가 재정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영국 역사상 초유의 대규모 경제조사 작업이 개시되었다. 윌리엄은 조사위원을 파견하여 잉글랜드 전역의 도시와 촌락을 돌며 상세하게 조사하도록 했다. 특히 각급 봉신 및 자유농이 소유한 토지와 재산, 수입 총액 등에 대해서는 철저한 대조 작업을 통해 조사 증명도 진행되었다.

 이들 조사위원이 제시한 질문은 토지의 규모와 가격, 가경지의 면적에서부터 소작인의 수와 소, 양, 돼지의 수, 시설물의 수에 이르기까지 한 치 오차도 없을 만큼 세밀했으며 엄정한 추적 조사까지 이루어졌다. 그래서 조사 대상자들은 마치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최후의 심판일(domesday)'을 맞은 것처럼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당대에 '앵글로·색슨 연대기'를 편찬한 역사가는 "그들이 제시한 조사 분류는 상세하기 그지없었다. 땅 한 평조차 누락하지 않았으며 돼지 한 마리, 소 한 마리까지 모두 기록에 남겼다."라고 기술했다.

 잉글랜드인들은 조사 결과의 요약본을 편찬된 '토지조사대장'을 가리켜 발뺌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하고 철저한 조사라 하여 익살스럽게 '둠즈데이 북'이라고 표현했다.

 1087년 9월 9일, 프랑스에 있는 루앙 대성당의 종소리가 정복왕 윌리엄의 죽음을 알렸다. 생전에 무수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잉글랜드 국왕이 프랑스에서 맞이한 최후는 그다지 장엄하지 못했다. 그의 숨이 끊어지자마자 도둑들이 그의 옷을 벗겨 달아났을 뿐 아니라, 시신이 안치된 방까지 전부 털어가 버렸다. 윌리엄 1세를 묘지로 옮겨 입관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곳이 자기 땅이라고 크게 소리쳤다. 급기야 60실링을 지불하고서야 윌리엄은 비로소 그 땅에 묻힐 수 있었다.

책
둠즈데이북과 무관한 사진


스톤헨지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약 130킬로미터 떨어진 솔즈베리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소도시이다. 이곳에 있는 에임즈베리 교회구에 스톤헨지가 자리하고 있다. 1130년에 한 신부가 이곳을 지나다가 거대하고 기묘한 거석들을 발견한 이래 스톤헨지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이런 거석 구조물이 80여 곳에 분포해 있고, 800기가 넘는 원형의 거석 유적이 남아 있다. 스톤헨지는 기원전 3,000년 ~ 1,100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대부분 스톤헨지가 종교적 숭배 사상을 반영한다고 보고 있다. 종교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면 원시 브리튼인이 그토록 힘들게 많은 거석 구조물을 세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솔즈베리의 스톤헨지는 영국 내 거석 구조물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수십 개의 거석이 완전한 동심원의 형태로 배치된 스톤헨지는 지름이 90미터에 달하는 환형 흙 구조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안쪽에는 56개의 원형 구덩이가 파여 있다. 가장 높은 돌기둥은 8미터에 달하고, 평균 무게는 30톤에 이른다.

 이 거대한 돌기둥에 대해서는 몇 세기 동안 신비롭고 기이한 전설이 전해 내려왔다. 아무도 이 스톤헨지의 진짜 용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추측이 난무했다. 일부 사람들은 이곳이 사원 혹은 제사장으로 쓰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심지어 UFO 착륙지라는 주장도 있었다. 최근 들어서는 천문을 관측하던 곳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스톤헨지를 세운 사람이 태양 숭배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스톤헨지가 세 단계에 걸쳐 세워졌을 것이라 추정한다. 거대한 돌덩이는 웨일스 남부의 프레슬리 산에서 옮겨온 것이다. 수천 년 전에 그들은 산에서 블루스톤이라는 청회색 사암을 캐내어 거친 표면을 다듬고 반질반질하게 윤을 내기까지 했다.

 이 육중한 돌덩이를 어떻게 웨일스 남부에서 400킬로미터 가까이 떨어진 솔즈베리까지 옮겨왔을까? 그리고 어떻게 스톤헨지를 만들어냈을까? 학자들은 오늘날까지도 이에 대한 추측과 검증을 계속하고 있다.

 이렇듯 솔즈베리 평원의 스톤헨지는 여전히 신비스럽고 기묘한 비밀을 간직한 채, 전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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