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한국전쟁 특수를 톡톡히 누리다
1952년, 일본의 외환 보유고는 3년 전에 비해 5배나 증가했으며, 특수로 인한 수입이 수출로 벌어들인 전체 외화 가운데 63퍼센트를 차지했다. 당시 일본에 '실 사(絲)' 변과 '쇠 금(金)' 변이 이름에 들어간 업종은 무조건 성공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떠돌 정도로 섬유 방직 산업과 금속 산업의 수주량은 전쟁 이전보다 평균 4~5배나 증가했다.
2년 후, 특수 경제에 힘입어 일본의 주요 경제 지표가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수준까지 회복되었으며, 이는 전후 경제 회복이 거의 끝나감을 의미한다. 한국전쟁 특수로 인한 소비와 투자 붐은 2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미국 원조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특수 경제만으론 완전한 경제적 자립을 실현하기에는 여전히 무리인 상황이었다.
1950년대, 일본 유명 영화감독인 우라야마 키리오가 제작한 '용광로가 있는 거리'라는 영화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영화는 훗날 일보 영화계를 주름잡은 스타가 된 요시나가 사유리의 데뷔작으로, 이 영화의 배경이 바로 1950년대 일본에 불어닥친 철강 산업의 열기였다.
1949년 9월, 요시다 시게루 내각은 '산업 합리화에 관한 결의'를 발표했는데, 이는 일본에 이미 새로운 산업정책이 수립되었고, 이 정책이 1950년대 전반에 걸쳐 시행될 것임을 의미한다.
산업 합리화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 합리화를 전제 조건으로 하고 향후 산업 구조에 가장 적합한 각종 산업 지침을 확립한다.
둘째, 신속하게 국제 가격을 따라잡는 것을 목표로 한다.
셋째, 기업의 자체적인 창의성으로 기업 내부의 합리화를 실현한다.
넷째, 가장 앞선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효율을 제고한다.
제일 먼저 산업 합리화가 추진된 분야가 바로 철강 산업이었다. 특히 일본 통산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는데, 1950년대 전반, 일본 철강산업에서 대형 평로와 전처리, 산소 취입 제련 기술이 보급되었고, 자동화, 고속화, 대량화, 계열화 생산이 기본적으로 실현되었다. 1950년대 후반기 제2차 산업 합리화 시기에는 고로의 대형화가 실현돼 연산 35만 톤의 고로에서 연산 450만 톤까지 확대되었다. 1960년에는 일본 철강업계의 산소 취입 전로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12퍼센트에 달했다.
일본의 에너지 산업 발전
일본의 산업 발전은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 제1차 산업 합리화 과정에서 정부 투자가 가장 집중된 산업이 바로 전력 산업이다. 1950년대 초기에는 수력 발전에 주력했던 일본이지만, 그 후에는 중심이 화력 발전으로 옮겨가 일본 자국 내 석탄을 이용해 발전을 실시하나, 얼마 가지 않아 석유 발전으로 전환했다. 10년도 안 되는 동안 에너지 세대교체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잘 진행됐다.
에너지 혁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본에 또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중동에서 석유를 증산해 석유 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그래서 생산 원가가 비싼 자국의 석탄 대신 석유를 싼값에 이용할 수 있었다. 석탄은 점점 지위가 계속 하락해 1970년대 오일 쇼크 이전까지는 발전에 사용되는 전체 에너지 가운데 3.8퍼센트밖에 차지하지 못했고, 중유 발전을 중심으로 한 대형 화력 발전이 77퍼센트를 차지했다. 이 밖에도 '미일 원자력 협정' 체결로 1957년 일본은 원자력 발전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혁명과 그로 인해 실현된 개혁과 진보는 일본 경제가 고속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탄탄한 기초를 잡아주었다.
일본이 만든 배가 세계의 바다를 뒤덮다.
해운업의 발전도 에너지 혁명에 필요한 석유를 운송하는 데 큰 역할을 발휘했다. 조선업은 본래 일본의 주력 산업 가운데 하나였다. 일본 함대와 수많은 상선이 전쟁 중에 파괴되었지만, 조선 설비와 기술 인재, 숙련된 노동자 중 절반은 여전히 건재했다. 합리화 시기에 일본 정부는 해운업의 회복을 위해 해운 회사들이 선박을 건조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한편, 계획 조선 정책을 시행했다. 또한 조선 기업들은 이 시기에 전기 용접 기술 등을 도입해 건조 선박의 규모를 크게 늘려, 1956년, 영국을 뛰어넘어 세계 제1의 조선 국가가 되었고, 1960년대에 들어서는 선박 생산량이 세계 선박 총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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