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영국61 [영국]#28_영국내전의 끝, 의회는 승리하고 찰스 1세는 처형당하다 영국 내전, 왕당파 vs 의회파 1642년 8월 22일, 결국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이날 찰스 1세는 노팅엄에서 깃발을 높이 쳐들고, 국왕을 배반하고 모반을 일으킨 의회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소리쳤다. 장장 6년에 걸친 영국 내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왕당파가 승리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곧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철기군'이 등장하면서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의회의 군대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국민에게 호소하며 폭넓은 지지를 확보해 나갔다. 국왕의 지지자들은 모두 영국국교회의 수호자들이었고, 의회의 지지자들은 대부분 청교도였다. 이 전쟁은 흡사 종교전쟁처럼 보였지만 전쟁의 근본 원인은 종교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라의 최고 권력을 누가 장악하는가의 문제였다. 국왕인가.. 2024. 7. 18. [영국]#27_존 햄던 사건 이후, 하원을 무단침입한 찰스 1세 찰스 1세의 하원 무단침입 오늘날 런던을 방문하는 외국 여행객들은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전통 의식에 깊은 인상을 받곤 한다. 특히 이 전통 의식의 배경에 전해지는 일화를 알게 된다면 더욱 의미심장할 것이다. 템스강변에 자리한 웨스트민스터 궁전은 영국 의회의 소재지이기도 하다. 매년 영구 국왕이 의회를 방문해 연설할 때는 이곳에서 300년 동안이나 지속되어 온 영국 전통의 독특한 의식이 거행된다. 먼저, 영국 국왕이 상원에 출석하면 검은 지팡이를 든 사절이 하원의원들에게 국왕의 출석을 알리고, 상원으로 건너와 국왕의 연설을 들을 것을 통지하기 위해 건너편 하원 회의장으로 간다. 하지만 사절이 하원 근처에 도착할 즈음, 하원의 경비병은 그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회의장 문을 걸어 잠근다. 그러면 사절은 하.. 2024. 7. 13. [영국]#26_찰스 1세, 영국내전의 전초전 영국, 내전의 바람이 불다 왕권의 본질에 반대하는 것은 곧 전제정치를 반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현대국가에서 정치적 기반이 되는 필수 요소이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인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적은 수업료를 내고 고도의 정치적 실험을 한 셈이었다. 햄던 사건으로 국왕의 권위가 실추된 데다 고갈된 재정을 채울 길마저 막막해진 상태에서 찰스 1세는 또다시 전쟁에 휘말렸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만약 이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찰스 1세는 그의 아버지처럼 모든 책임을 후계자에게 물려준 채 조용히 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것이, 이 전쟁은 바로 찰스 자신의 어리석음이 발발한 것이었다. 찰스 1세는 당시 청교도가 장악하고 있던 의회와 갈등하는 상황에서 장.. 2024. 7. 12. [영국]#25_찰스 1세와 영국의 권리 청원 찰스 1세 vs 의회, '권리청원' 찰스 1세는 왕권에 도전하는 의회를 해산시켰다. 그러고는 불법으로 상인들에게 새로운 세금을 징수하고, 젠트리에게는 강제로 대출을 받게 하여 국채를 모집했다. 이에 의회의 반대파는 영세민의 조세저항 운동을 주도해 나갔다. 이렇게 왕권과 민권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영국 왕조 사상 가장 격렬한 비극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극의 주인공인 찰스 1세는 스스로 위기를 재촉하고 있었다. 1628년, 조세저항으로 수세에 몰린 데다 재정까지 고갈되자 찰스 1세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의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하원은 의회가 소집되자마자 찰스의 이런 전횡을 맹렬히 비난하며 특단의 조처를 한다. 바로 국왕을 상대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보장한 '권리청원'을 제출한 .. 2024. 7. 11. 이전 1 ··· 6 7 8 9 10 11 12 ··· 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