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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일본

[일본 근현대사]#24_메이지 유신, 개화의 바람이 불다.

by 티제이닷컴 2024.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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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3년 3월 20일 오후, 황궁에서 천황의 시중을 드는 여관들이 여느 때처럼 천황이 있는 어학문소에 도착했다. 그들은 여느 때처럼 천황의 머리를 빗겨주고, 당시의 궁중 풍습에 따라 천황의 얼굴에 분과 연지를 발라주어야 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간 여관들이 그 자리에서 멈칫 서더니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천황이 자기 머리카락을 잘라버린 것이 아닌가. 이는 일본 역사상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서양 문명을 좇아서


 메이지 유신 이전까지 일본인들은 머리를 길게 길렀다. 그리고 무사들은 양쪽에 검을 차고 다닐 수 있는 권력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신분을 상징하는 것이자 생활 풍습이었다. 당시 일본에는 계급 제도가 매우 엄격해 화족과 평민의 통혼은 금지되었고, 옷차림만으로도 신분이 어떻게 되는지를 판가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위 관리들은 보통 노우시(헤이안 시대 귀족들의 평상복)와 카리기누(사냥이나 스포츠를 할 때 입는 복식)를 입었는데, 옷이 워낙 거창하여 행동에 제약이 있었다.

 메이지 정부는 성립 직후부터 대대적인 문명개화 정책을 실시했다. 1871년 8월 9일, 정부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검을 휴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단발탈도령'을 내리고, 얼마 후에는 사족과 평민 간의 통혼을 허용했다. 또한 서양처럼 양력을 사용하게끔 했으며, 서양식 예복을 관리들의 정식 예복으로 삼았다. 관리들이 양복을 입도록 장려하는 일련의 문명개화 법령도 선포했다.

 일본 중세 이래로 이어져 온 풍습을 폐지하고, 서양의 생활 방식을 따르도록 장려한 것이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사회 개혁을 통해 세계적인 조류와 일본 특성에 적합한 문명 체제를 수립한다는 것이었다. 천황이 솔선수범하고 정부도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사회 개혁을 추진했다. 이 기간에 수많은 소책자가 발간되어 단발과 의복 간소화, 육식, 종교 등에 대한 사항을 홍보했다.

 1874년, 특이한 책 한 권이 일본에 발간되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당시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던 폐번치현과 사민평등, 징병, 조세, 학교 제도, 의식주 등 변화에 대해 문답식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책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사람 중 한 명은 보수적인 평범한 시민을 대표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개화파 인사를 대표했다.

 이 책은 당시 정부의 입장에서 대중에게 철도와 전보, 전화, 경찰, 양력, 화폐 등에 대해 선전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기도 다카요시는 직접 '신문잡지'를 창간해 천황과 궁궐 관리들이 서양식 의복을 입었다거나, 유럽을 방문했다는 등의 소식을 대중에게 보도했다.

 1872년, 사법성과 도쿄부는 문명 개화령 위반 사항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법령을 제정하고, 그해 11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이 중에는 춘화(남녀 간의 성희 장면을 나타낸 그림이나 사진) 판매와 남녀 혼욕, 문신, 부녀자의 단발을 금지하고 아무 곳에나 대소변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등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활 풍습을 규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수도에서 가장 먼저 이 법령을 제정하고 다른 현에서도 잇따라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런 행위 규범의 제정은 사회적인 분위기를 일신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도쿄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었다. 1875년에 도쿄에 긴자 대로가 건설되었다. 길 양편에 가스등이 줄지어 서 있어 밤에도 대낮같이 밝았다. 길가에는 소나무와 전나무, 벚나무가 늘어서고 유럽식 건물이 지어져 마치 유럽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양복에 중절모를 쓴 정부 관리들과 가는 허리띠에 유럽 최신 유행 옷차림을 하고 양산이나 외국 서적을 든 여성들이 거리를 활보했다. 이 길은 일본 최초의 서양식 대로로 메이지 유신의 문명개화를 상징했으며, 기도 다카요시는 이 길을 '일본 거리의 문명개화'라고 불렀다. 이곳 긴자는 지금까지도 도쿄의 가장 번화한 상업 지역 중 하나다.

 1871년, 도쿄에 처음으로 '카이요테이'라는 서양 식당이 등장한 이후, 이윽고 서양 식당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일본인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본래 일본인들에게는 더러운 것으로 인식되어 있어 아예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던 쇠고기 스테이크가 불티나게 팔렸다. 사람들이 맥주와 브랜디를 마시며 어설픈 영어를 섞어 쓰고, 젓가락으로 수프에 든 쇠고기를 집어 먹었다. 도쿄에서 처음 생겨난 서양 식당은 그 후 빠른 속도로 오사카, 요코하마, 고베 등 다른 도시로 퍼져나갔다. 서양 식당을 찾는 사람들은 고위 관리와 유명인사부터 인력거를 끄는 수레꾼과 배우, 학생들까지 매우 다양했다.

서양식 의복을 입고 머리를 자른 후의 메이지 천황
서양식 의복을 입은 메이지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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