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46 [영국]#34_크롬웰의 생애와 크롬웰 관점으로 본 영국내전 크롬웰의 생애 1599년, 크롬웰은 잉글랜드 헌팅던의 평범한 소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2년간 수학하며 청교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는 아버지가 사망하자 대학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 뒤 20여 년 동안 농사를 짓고 조세와 법률을 공부하며 지냈다. 이때까지 크롬웰은 전혀 영웅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그저 열 명이 넘는 식구를 먹여 살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1628년과 1640년에 각각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지만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영국 내전이 그의 운명을 바꿔 놓지 않았더라면, 크롬웰은 아마도 가난한 시골 지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40세가 넘도록 단 한 번도 군인이었던 적이 없었기에 그때까지는 누구도 그에게서 군사 영웅의 기질을 발견.. 2024. 7. 26. [영국]#33_크롬웰의 영국과 크롬웰 사후의 영국 청교도 금욕주의를 강요하다 한 영국 역사 연구가는 이렇게 지적했다. "찰스 1세가 처형당한 후, 크롬웰이 잉글랜드를 통치했다. 그는 자신을 '호국경'이라고 칭했다. 국민들의 생활방식은 예전과 아주 많이 달라졌고, 너무도 많은 것들이 변해 버렸다. 크롬웰은 국민들이 모두 청교도 방식으로 생활하기를 원했다. 크롬웰은 모든 술집과 극장을 폐쇄하고 체육활동을 금지하는 등 일련의 조치를 단행했다. 특히 크리스마스 축제를 금지하는 최악의 조처를 하면서 병사들에게 일반 가정집을 수색해 크리스마스 선물과 음식 등을 모두 압수하게 했다. 청교도가 금욕주의를 지향하는 만큼 청교도 방식의 생활은 잉글랜드를 매우 무미건조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크롬웰이 통치하는 5년 동안, 잉글랜드에는 체계적인 정치체제가 마련되었고 행정기구.. 2024. 7. 25. [제주도][2024.07.16] 숙소에서 놀고 먹고 밤새고! (+07.17) 여행이란 자고로 갈수록 사진이 줄어드는 법17일 사진은 거의 없다봐도 무방하다물론 17일은 비행기도 가까스로 타서 뭘 할 여유따윈 없었지만 일단 대표사진으로 쓰고 싶어서 다시 한 번 투척 한 번에 다 못씻으니깐 씻을 애는 먼저 씻고나머지는 마당에서 물풍선 가지고 놀자고 했는데죄다 안 씻고 물풍선 가지고 놀아버리기~! 요즘 물풍선은 한 번에 몇 십개씩 물 넣고, 알아서 묶인다.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어 이거 진짜 옆에서 보면 왜 저러고 놀아? 싶을 거 같은데막상하면 그냥 뭐든 재밌음 이거 끝나고 물풍선 술래잡기(?) 비슷한 거 헀는데찍어도 당최 공유를 안하니 사진, 영상을 받을 수가 없다. 끙... 저녁때메 또 장보러 가고저녁으로 또 삼겹살 구워먹었는데그 사진들은 없음. ㅎㅎㅎㅎ이번엔 밖에서 굽기만 하고.. 2024. 7. 23. [제주도][2024.07.16] 월령포구가 그렇게 재밌더라?(+접짝뼈국 존맛) 이번 여행 최대의 고민물놀이를 어디서 할 것인가...물 무서워하는 친구들은 해변에서 놀고 싶어 하고물 좋아하는 애들은 수심 깊은 포구에서 놀고 싶어 하고.. 해수욕장 vs 판포포구오늘 점심 먹으러 가기 전까지도 계속 고민했다. 그러다 발견한 월령포구! 지도상에서 쉴만한 물가펜션 쪽 가면 앞에 이름 없는 해변이 있다.해수욕장이 아닌지라 안전요원도 없고, 경계선도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좋은 선택지였다.쵝오. 이번 여행+ 여태 물놀이 중에서 제일 재밌었다. 오전엔 원래 981 파크가 일정이었는데,다들 전날 밤에 슬슬 취소함.. ㅋㅋㅋㅋㅋㅋ그래서 5명만 다녀오고, 나머지는 11시까지 쉬었다. 그리고 일억조 방문! 여행객보다는 현지인이 많은 느낌(?)실은 제대로 안 둘러봤다.우연히 옆 테이블에.. 2024. 7. 22. [제주도][2024.07.15] 배낚시 체험하고 장보고 숙소에서 먹고 놀기 인생 첫 배낚시 체험배멀미할 거라 예상했고 역시나 배멀미했다. 배낚시는 2시간에 15,000원금액이 나쁘지 않아 도전해 봤다여름엔 밤에 한치 잡는 것도 있던데 우린 일반 배낚시 우리 말고 다른 팀도 있었는데우린 2명 빼고 10명이 해서 단독으로 진행했다. 2시간 지옥 시작 생각보다 배 타고 꽤 멀리 나갔다 선장님한테 엄청 혼났다어떻게 그렇게 제대로 하는 사람이 한 명이 없냐고 제대로 못하니 체험으로 왔지 ㅡㅡ 미끼는 다행히 새우젓(?)이었다. 밍구랑 준형이지난번 오사카에선 밍며들었고,이번 제주도에서는 준며들어버렸다.... 다행히 쉽게 빠져나옴 이 이름도 모르는 물고기가 제일 많이 잡혔다.얘는 회로도 안 되고, 구이용으로 손질해 줬다.저 등에 난 걸 뭐라 하더라 저게 꽤 딱딱해서 찔려서 피났다. '저런.. 2024. 7. 22. [제주도][2024.07.15] Off to Jeju & 올래국수 7월 15일 제주도를 다녀왔다. 벌써 일주일 전 역시 시간은 잘 가 오전 6시 40분 비행기라는 미친 강행군이때 뼈저리게 느낀 건..난 젊지 않아. 5시 6분 첫차 타고 가려했는데 20분이나 일찍 도착해 버렸다. 이번 여행은 총 12명이었는데,나를 뺀 11명은 같은 뱅기고 나만 다른 뱅기였다. 하핳핳그 뱅기 찾은 것도 난데!공항 가는 것도 나 빼곤 다 공항버스 하지만 정훈투어는 낙오 빼면 시체공항버스-비행기부터 첫 낙오자 발생 출발 전날까지 언제 가는지 모르는 애공항버스팀은 타기 10분 전까지 언제 타는지도 모르는 애공항버스 출발하고 한참 뒤에 일어난 애 단독으로 움직일 기회가 있다면 놓치지 마라! 정훈투어5인승, 7인승 차 두 대로 움직였는데,잘못검색해서 '제주올래국수' 들렀다가 왔다. 아침 일찍인.. 2024. 7. 22. [영국]#32_크롬웰, 영국의 호국경이 되다 크롬웰 집권하다 10여년간 전쟁을 치르며 새로운 이익집단으로 군대가 급부상하였다. 군대는 편히 앉아 탁상공론만 하는 의회에 대해 반감을 가졌다. 군대의 무력은 대개 그 권력의 기반이 된다. 군대는 자신들이 세금을 정하고 징수해서 고정적인 수입을 갖게 되기를 바랐지만, 곧 의회가 걸림돌이 되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1648년에 크롬웰이 병사들을 보내 자신에게 비협조적인 장로파 의원 140여 명을 의회에서 강제로 축출한 이래 의회에는 고작 90명의 의원만이 남아있었다. 이후에는 50~60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의회는 이렇게 몇 차례의 숙청을 거쳐 잔부의회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군대 편에 기울어 있던 크롬웰은 이 '골칫거리' 기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이미 잔부의회는 '둔부 의회(영어로 '찌.. 2024. 7. 22. [영국]#31_찰스 1세의 죽음 이후의 영국과 크롬웰 찰스 1세 처형 이후의 영국 찰스 1세의 머리가 땅에 떨어진 후, 한 소년이 그의 머리를 집어 들며 소리쳤다. "보세요! 반역자의 머리예요!" 이 장면을 목격한 어느 성직자는 비통함과 회한으로 가득 찬 글을 남겼다. "소년은 국왕의 존귀한 머리를 마귀의 머리처럼 집어 올렸다. 관중은 미친 듯이 아우성을 질러댔다. 마치 지옥에 온 것 같았다. " 국왕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이 전 영국에 퍼지자 사람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쨌든 크롬웰 경이 군대를 장악한 뒤 의회를 압박하여 저지른 국왕 처형 사건은 민심을 잡진 못했다. 로렌스 에카드는 '잉글랜드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일부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른 것은 그들이 끝까지 국왕과 맞섰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국왕의 머리를 높이 쳐들자 군중 .. 2024. 7. 21. [영국]#30_1649년 1월 30일, 찰스 1세 최후의 날 1649년 1월 30일, 영국 국왕 찰스 1세 처형의 날 기록에 따르면 이날은 바람이 가볍게 부는 화창한 날이었다. 수천 명의 런던 시민들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국왕의 처형식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화이트홀 궁전 앞 광장에 운집했다. 광장이 바라다보이는 왕실 연회장의 방 안에서는 찰스 1세가 자신의 삶을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에는 찰스 스튜어트 혼자 있었다. 그는 자신의 등장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을 보면서 자신이 군주였던 나날들을 떠올렸다. 따뜻한 겨울 햇살이 고개를 내밀었을 때, 찰스 1세는 아직 어린 두 아들과 눈물의 작별 인사를 마치고 홀로 앉아 기도를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 2024. 7. 20. 이전 1 2 3 4 5 6 7 ··· 28 다음